내가 나를 사랑할수록 인간관계는 다듬어진다.
내가 나를 사랑할수록 인간관계는 다듬어진다.
사람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억된 모습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는 나의 진심 어린 모습을 진중하다 여기며 이를 사랑하고, 또 다른 이는 솔직한 태도에 열광하며 흥미를 갖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를 세심하다 여기며 나의 소소한 이벤트에 감동을 받고, 어떤 이는 나의 무심함에 소홀하다 여기며 기대를 접는다.
사람의 관계의 태도는 무엇을 중요시 여기느냐에 따라 차이가 드러난다. ’상대가 내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와, ’내가 어떤 걸 받고 있는지‘로 나뉜다. 이 두 개의 말은 얼핏 보기에 같은 것 같아도 관점에서 차이가 드러나는데,
‘상대가 내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여기에서의 바라보는 태도는 상대에게 맞춰져 있다. 나에게 50으로 다가올지라도, 상대는 100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상대의 환경과 성향, 관계를 대해왔던 평균 값을 토대로 수치를 매기는 것이다. 이는, 내 욕구와 기준에 상대를 맞추는 것이 아닌, 오롯이 상대의 입장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라 생각한다. 관계에서 욕구를 배제하고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 관점은, 충분히 채워지진 않아도 갈급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다.
‘내가 무엇을 받고 있는가’
를 중요시 여기면 꽤나 많은 감정 소모와 자기 연민을 느끼게 된다. 나를 얼마나 채워주고 있는지, 상대가 주는 관심으로 인해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여기는지, 나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되뇌며, ‘나는 과연 충분한 사랑을 받는지.’에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된다. 나의 기준이 절댓값이 되어, 맞춰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갈구하고 연민의 감정에 중독된다. 다만, 이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결국, 나의 행복은. 나를 사랑하는 건, 오롯이 나뿐이지 않는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자생이 아닌 상생과 공생이라면. 이를 위해 갈구하는 것도 하나의 나를 지키는 방법이요, 사랑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각자 관계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는 다르고. 그 어떤 것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존중의 태도가 결여된 관계에서 오는 감정 소모는 심히 나를 건조하게 만들고 더욱 고립되게 만든다.
나의 정답이 어떤 이들에게 오답이 되는 관계라면 과감히 포기하고 싶다. 또, 상대의 정답이 나에게 이물감으로 느껴진다면 관계의 간극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책임져야 할 것과 생각할 것이 많아지는 소비 가득한 앞으로의 필연적 시간들이, 서로의 진심이 온전히 닿는. 존중과 이해 가득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이물감 없는 관계들로 가득 차고 싶다.
그렇게, 난.
나를 사랑하기 위해, 주변을 다듬고 다듬어 안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