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 자 까 Jun 25. 2024

없음과 없음이 만나고, 미미하나 충분히 아름다운 것.



반항하고 싶다.

정확히는 ‘나를 이해시키고 싶다’가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스무 살 초반, 우연히 본 영상에서 인상 깊었던 남녀가 있었다.

만난지 5년 차 된 커플이었고, 편안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의 데이트 주기는 한 달에 한 번.

연락은 하루에 한두 번 안부 인사.


아직 연애에 큰 상처도 받아본 적 없던 스무 살 초반의 나였는데, 두 사람의 신뢰를 기반한 편안한 관계가 너무 좋아 보였다. 그런 관계를 갈망하는 감정이 은연중 시작된 것이었다.


신뢰가 무너져 버려 밑바닥을 뚫고 뚫어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과거 연애들과, 스스로에게 실망해 반항과 방황을 일삼았던 지난날의 나의 연애사.


태생적으로 무심한 성향으로 아쉽게 놓쳤던 과거 연인들에 대한 속죄로 그간 나에게 맞지 않은 옷들을 입어왔고, 애쓴 노력에 비해 처참했던 결과는 불필요한 사랑의 통증을 겪게 했다.


외골수 기질이 짙은 나는 오롯이 집중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 대상은 항상 나였고, 내가 선택한 상대에게도 집중을 해왔다.


그 집중의 형태는 상대에 따라 수시로 변해왔고, 드디어 마침내, 20대 마지막 여름이 되어서야 나에게 맞는 형태를 찾을 수 있었다.


난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울수록 거리에 대한 계산과 분명함은 더더욱 확실해야 된다. 이게 내가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며, 상대에게 받고 싶은 존중과 사랑의 형태이기도 하다.


자주 연락하고 만나야 그것이 사랑이라 여기는 연애 시장에 반항하고 싶다. ‘사랑하면 보고 싶지 않냐, 뭐 하는지 궁금하지 않냐.’라고 외치는 그들에게 나는 되묻고 싶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매일 연락하며, 보자고 하는지.


물론 나도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을 때도 많았다. 다만, 나는 속도와 거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까워지면 불안해졌다. 이 속도와 거리는 나의 노력만으로 유지할 수 없는 것이며,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천천히 스며들고 가까워지는 관계를 선호한다. 상대에게 무언갈 바라고 나를 채우기 위해 다가가기보단,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사랑을 하고 싶다. 방 안에 놓인 화병을 보듯, 그 자리에 항상 있는 예측 가능한 아름다운 관계를 원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건조하다 말하지만, 나는 나를 지키고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나에게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관계의 형태라 생각한다.


누구는 공포 회피형이라 여기며 측은한 시선으로, 네가 진정한 사랑을 안 해봤다며 걱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정의 내리지 말고 내 사랑의 형태를 존중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뜨거워야 사랑일까. 꼭 아파야만 사랑일까.

그저 잔잔히 자연을 바라보듯 편안함과 안정을 기반한, 향유하는 감정을 사랑이라 여겨보는 건 어떨까.


각자의 삶에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며 조용히 진심으로 응원하는 관계를 원한다. 마음껏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약속한 그 공간에 가면 항상 만나는 관계를 말이다.


상대의 있음이 아닌 없음을 예상하고 만나며, 연애 시장에 취약한 개인주의적 관계를 지향하고, 타인이 보기에 미완성 같을지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관계. 그렇게 진심을 기반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관계를 말이다.


혼자가 가장 안정적인 나는, 이 안정을 유지해 줄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참고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