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사랑을 좋아한다.
마음에도 사계절이 존재하니, 나조차도 내 감정을 모를 때가 많다. 많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축복과 저주. 양면성 가득한 달란트에 몸부림치며, 괜한 자책과 고민의 시간들로 밤을 지새우곤 하는데. 이렇게 나 자신조차도 이해하고 깨닫기 힘든데 타인의 사랑과 정성을 해득하는 건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타인의 입장을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공감의 부재와 조급한 성격이 더해져, 사랑했던 사람들을 아쉽게 떠나보냈던 일들이 종종 있었다. 반복되는 상실에 괴로웠던 나는 ‘내가 겪어본 것이라면 공감과 이해를, 내가 겪지 못한 것이라면 함부로 단언하며 판단하지 말 것.’ 어렵지만, 사랑하는 이를 대할 때 수 없이 이 문장을 되뇌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다 보니, 욕구상실된 건조하고 잔잔한 사랑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갔다.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면밀히 사랑을 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곤 주위는 많은 걱정을 했다. 회피와 수긍, 단단한 언어로 보호하는 연약한 감정들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심히 흔들리면 어떠하랴. 본래 단단한 것은 쉽게 부러지지만, 유연한 것은 어떤 바람에도 부러지지 아니한다. 내 사랑의 불안정한 흔들림은, 흔들리는 만큼 유연한 것이며, 뿌리내릴 곳만 찾는다면 누구보다 오래갈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가 나의 하루를 궁금했으면 하는 마음. 좋은 풍경을 보면 가장 먼저 나에게 사진 찍어 보내줬으면 하는 기대. 그 어떤 사람들보다 나를 특별히 여겨주길 바라는 욕심. 내가 문득 건 전화가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음 하는 바람.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재밌길 원하는 것. 이 지극히 당연하고 당연한 것들이 단단한 관계의 욕구를 만들어, 나를 부러지게 만들었다.
부러지고 부러지며 깨달은 것은. ‘조급히 기대하지 말 것. 상대 동의 없이 환상을 함부로 갖지 말 것. 원하는 것을 없음으로 만들어 자유로움을 누릴 것. 무분별한 자기 연민과 욕심으로 사랑을 단념하지 말 것. 그저 내가 사랑하고 있단 사실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 깨달음은, 사랑이 많은 내가 더 이상 갈구하지 않고 안전히 감정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는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 때도 있고, 불편한 시선과 걱정에 이물감을 느끼게 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있음이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드는 나와같은 사람들에겐 아주 안전한 사랑의 형태라 생각한다. 이 생각은 나와 같은 사랑의 형태를 가진 누군가의 대화에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소연아. 나는 이런 사랑을 원해. 근데 주변 사람들이 나를 많이 걱정하더라고. 근데, 누가 뭐라 해도 난 지금이 너무 행복해.”라는 상대의 말에, 나는 잠시 멈췄다가, 끝내. “응. 네가 행복하면 그게 정답이야.”라고 내뱉곤 한 없이 생각에 잠겼다. 잠긴 생각에서 나올 땐, 내 사랑의 가치관과 닮아 있는 이를 응원하는 마음과,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안도감에 처음으로 안락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걸까. 모두가 변화를 요하는 나의 감정이, 이 사람 앞에선 공감을 받을 수 있어서? 불안하다 여길 것이 아닌, 안전한 게 되어서?
면밀한 관계를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저 적당한 거리가 주는 안전함이 더 좋은 나일뿐. 과정이 상처로 가득 찼다고, 이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다. 그저 현재 내가 안전히 여긴다면, 이 또한 행복한 사랑이 아닌가.
사랑이 너무 많아서.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어서.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멀리 바라보며 넓게 사랑을 주는 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