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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자 까 Jul 29. 2023

사랑 26p.

욕망의 투영과 해갈

난 내가 굉장히 편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마인드. 뭔지 알지?


근데 어느 순간부턴가 내 연애가 불행해지는 거 같은 거야. 상처만 받다 끝나는 거 같고. 그래서 너무 내가 자유로운가? 싶어서 남자를 잡아봤는데, 귀찮기도 하고.. 더 불행해지는 기분이라 금방 그만뒀어.


근데 그거 알아? 이거 굉장히 교만한 생각이었던 거?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살기로 했으면 진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난 사실 그렇지 못했던 걸 문득 깨달았어. 온전히 상대를 이해한다고 해놓고, 사실 속으론 열심히 재고 있었던 거야.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해 주는데, 이걸 안 한다고?’, ‘누울 자리 보고 눕는 건가? 왜 태도에 성의가 없지?’, ‘너무 날 편하게 대하는데.. 결혼 상대로는 아닌가?’


봐봐. 모든 걸 이해한다는 건 그냥 좋은 연애 또는, 결혼 상대로 보이고 싶었던 내 위선이었던 거지. 그저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쓰기 여력 없는 인간의 방어였던 거고, 상대에게 받고 싶은 태도를 나인 것처럼 포장했던 거에 불과했던 거야. 욕망의 투영이랄까? 난 사실 자유로 포장된 재고 재는 위선적인 여자였던 거지. 조금이라도 상처 줄 것처럼 행동하면 도망가기에 바빴던 연약했던 사람이었던 거고.


상처받기 싫어 포장했던 것들이 어느새 내가 되어 덤덤하고 건조한 연애를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갔던 거야. 사실은 전화하고 싶으면서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전화를 싫어하게 된 것처럼 말이야.


근데 이걸 깨닫는 순간,

얼룩진 감정에서 해방된 느낌이었어.


속에서 막.. 마구마구 응어리지고 엉켜서 풀 생각조차 안 들게 할 만큼 날 귀찮게 했던.. 무언가가 사르르 풀리는 그런 느낌? 뇌가 시원해지는 느낌 알아? 머리가 차갑게 식어. 근데 화가 나도 그러는데, 이건 그런 차가움이 아니야. 따끔하고 뜨겁게 지끈지끈 쉴 새 없던 내 머릿속이 냉수에 담근 것처럼 시원해졌어. 심지어 차가워졌어. 그리고 생각이 하나하나 제자리에 정돈되는 기분? 이 기억은 이 자리로.. 저 기억은 저 위에 선반에.. 아, 요건 저기 화분 옆에.. 이렇게 생각이 정리가 되었어. 그러니까 보이는 거야. 내 연애사가.


자유로 포장했던 그간의 내 연애사는, 침묵의 공공칠빵 게임처럼 언제 터지나 계속 조용히 보고 있었던 거야. 뭐라 뭐라 떠들지도 않아. 그냥 조용히 지켜만 봐. 그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랑 안 맞으면 ‘넌 아웃!‘ 이러면서 도망가 버려. 난 널 존중했는데, 넌 아니었구나 하면서.


근데 객관적으로 다시 바라보니까.. 내가 잘해줬으니 본인들 입장에선 최선을 다했더라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존중했고, 만날 때 안 하던 것들을 해왔었고,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 줬던 거야. 헤어지더라도 나름의 예의를 갖춰 헤어짐을 고했었고, 그리움이란 없던 사람이 날 그리워하기도 하고.. 그냥 난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아왔던 거야. 근데 불행하게도 그간 위선에 눈이 가려져 슬픈 서사들로 기억해 왔던 거지. 내가 날 속인 거야.


교만함을 깨달으니 사람이 겸손해지고, 겸손해지니 삶이 행복하단 걸 비로소 깨달았어. 이렇게 인생을 또 배웠어. 정말 문득, 번뜩.


지금 너의 연애가, 미래가, 또는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지니? 막연함과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타인과 나를 자꾸만 비교하게 되니? 그럼 한번 겸손해져 봐. 내가 어떤 사람일까, 어떤 포장지로 스스로를 감추고 있을까, 너무 자기 연민의 감정에 중독된 건 아닐까, 슬픔에 탐닉되어 스스로 주인공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의 문제는 꽤나 심플했고, 난 불행하지 않다는 결론에 결국 도달할 테니까. 겸손해야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내 삶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거 같아. 그 감정이 정말.. 달다 못해 구름을 뛰어다니는 기분이야. 없었던 체력도 뿜어져 나와. 충전기를 꽂고 달리는 전기차 같아. 어때, 궁금하지?


역시 생각의 방은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건강해지는 거 같아. 너는 얼마나 자주 청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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