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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자 까 Jul 26. 2023

사랑 25p.

너란 존재는 증명 같았다.

너란 존재는 증명 같았다.


한껏 취해있는 자기 연민과 생각이 많은 밤 스스로 써 내려가는 비운의 러브스토리. 왜곡된 지도 모른 채,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슬픔과 아픔에 중독된 서사들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네가 찾아왔다.


너는 좀 특이했다. 입에 발린 말로 날 설레게 하지도 않았으며, 그 어떤 표현조차 없는 덤덤한 사람이었다. 과한 사랑에 날 벅차게 하지도 않았으며, 메마른 관심에 날 외롭게 하지도 않았다. 함께하는 날엔 설렘보다 편안함이 가득했고, 함께하지 않는 날엔 불안함보다 쉼으로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오해로 가득 차 불안한 감정에 삐죽거렸던 나에게, 감정을 지운 대답과 세심한 다독임으로 대답하며, 부끄러웠던 나에게 죄책감을 덜어주고 자신의 상황을 탓하던 너였다. 어느 말에도 거짓이 없어, 투명한 너는. 참 수채화 같구나.


투명한 너를 만나, 사람을 차근차근 믿어가는 나에게 놀라운 충돌이 나타났다. 왜곡으로 뒤틀려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빳빳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사랑받은 적 없었던 나는, 누구보다 존중받고 사랑받는 여자였다. 헌신적인 나이기에 존중받을 수 있었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누군가의 첫사랑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결국 끝이 헤어짐이었기에 자기 연민으로 끝났던 나의 이야기는, 자세히 보니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받고 아낌 받았던 추억이었다.


연민에 취하고 자책에 중독되었던 나에게 이러한 충돌은 꽤나 신선했다. 왜 그간 왜곡되어 생각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탐닉이 되어 있었을까. 어느 곳에 불순물이 가득 차 순환이 안 되었던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너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고뇌하고 고찰해도 해갈되지 않던 나의 이 오염된 습관을 맑게 정화를 시켜주는 걸까. 너와의 끝은 과연 진정한 사랑의 깨달음일까? 아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인연일까? 뭐든 확실한 건.. 너를 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비슷한 점이 많아 괜히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그리게 된다. 그래서 내가 내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고, 오랜만에 응석도 부리게 된다. 너란 사람을 위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잔잔한 간질거림과 쌓여가는 신뢰의 평온함이 내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너와 내가 맞이하는 세계관의 연결이 충돌이 아닌 스며드는 과정이라 느껴지는데, 이 기분이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싶게 만든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매일 나를 이렇게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걸까?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지내온 시간에 비해 자꾸 커져가는 내 마음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네가 나에게 보여주는 작은 태도 하나하나와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아칙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소중하게 관망하며 속도를 맞추는 중이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시간의 유효기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끝이 다가왔을 때 슬픔보단 고마움이라는  잉크로 마침표를 찍을 것 같다.


너란 존재는

내가 사랑스럽단 증거이자,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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