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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자 까 Oct 29. 2023

묵묵

묵묵함의 이야기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고독한 인간과, 감정이 예민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묵묵한 인간'이다.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혼자 자연 속에서 사색하는 시간이나 음악을 들으며 내적 흥을 키우는 시간을 말할 수 있는데. 이때 타인으로 인해 사색이 시끄러워 지거나, 흥이 깨져버리면 진짜로 책임져야 한다.(너 때문에 흥이 깨져버렸으니, 책임져! 딩가딩가-) 그만큼 고독의 맛을 아는 인간들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은 너무나도 중요한 삶의 루틴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으나, 주변인을 외롭게 만드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그렇기에 이런 인간들에게 필요한 건, 그 시간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묵묵한 인간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존중하는 것도 너무 고마운데, 이해하기까지 하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으흐흐) 묵묵히 감정에 동요될 시간과, 내면의 쉼을 도와주는 상대의 묵묵한 태도를 사랑한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유일한 존재가 있는데, 바로 단순한 묵묵형 인간이다. 나 혼자 감정의 요동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심지어 작은 공격을 하는데도 이런 유형의 사람은 속된 말로 내 공격을 씹는다. 그리고 묵묵히 별다른 대응 없이 대화 화제를 돌리곤 하는데.. 완전 내 취향이다. 예를 들면, 마녀사냥 2에서 코쿤님이 상대가 진지하게 "아, 꺼져."라고 하면 "휘리릭-!" 하며 진지하게 꺼져준다고 하는데 진짜 너무 좋다. 나는 내가 감정적으로 나오면 0.1초 만에 후회를 하고 자책으로 넘어가는데(감정적인 걸 누구보다 극도로 혐오해서,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바로 자책으로 넘어감), 이럴 때 아예 못 들은 척해 주거나, 감정적일 수 있다며 다독여주는 묵묵하고 안정적인 스탠스를 보이면 참 고맙다. 이와 관련된 기억에 남는 순간이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어떤 친구의 반복적인 앞 뒤다른 행동으로(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만의 배려였던 것. 그러나 나랑은 성향이 안 맞아 비꼰다고 오해했다.) 질려버려 감정적으로 화를 냈던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을 중간에서 지켜보던 오빠가 달래줬던 기억이 참 고맙게 남아있다. 소중했던 친구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힘들었는데, 격한 감정으로 대했으니 죄책감과 자괴감이 컸다. 그랬던 나에게 "그럴 수 있다며, 감정적인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거다."라며 위로해 준 그 오빠에게 참 고마웠다. 또, 두 번째로는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이리저리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내가 작은 오해로 감정적인 대처를 하게 되었는데, 그 감정적인 공격을 들은 상대가 해준 말이 참 짙게 마음에 남아있다. 본인도 상황이 힘들어 감정적으로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 이성적이고 성숙한 대처로 나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감정적인 대처를 한 나에게 조용히 정떨어지고 있었는데, 그런 나의 마음을 듣고 있기라도 한 듯 그가 내게 전해준 말은 참 이뻤다. "지금 이런 상황이 있는 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나의 어려운 환경이 잘못이다. 그러니, 감정적인 태도로 인해 이런 일이 생겼다고 자책하거나,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아라. 너의 마음 이해한다."라는 말이었다. 처음 보는 성숙한 대처에 눈이 동그래지고 마음이 정말 많이 열렸다. (내가 이상한 짓만 안 하면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신뢰와 안정을 느꼈던 순간)


과거 감정적인 나를 괴롭히던 이들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어린 나는 참 상처였던 것 같다. 사람이기에 감정이 있고, 살아있는 감정이기에 기복이 있는 것인데 왜 그걸 미워하고 회피해 왔는지. 스스로를 사랑할수록,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들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자존감이 낮았던 과거의 나는 감정을 회피하기에 급급했지만, 지금의 나는 내 감정을 좀 더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저들의 도움이 정말 컸다. 그리고 저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것. 결국 내가 내리는 정의는 이것이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묵묵하고 고요하다는 것.



말 한마디의 힘이 정말 크다.

나비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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