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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자 까 Dec 19. 2023

사랑

12월 중순의 이야기



봄이 가득했던 세상에 여름이 다가올 무렵, 어떤 계기로 아프고 슬프게 기억했던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버림받는 헌신녀에 취해있던 나는, 알고 보니 누구보다 헌신을 요구하는 이기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상대의 100을 50이라 여기던 욕심 많은 나. 유별난 사랑이 익숙해, 괜히 덤덤한 척하는 위선 가득한 사람이었다.


난 가족에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유별난 사랑을 받아왔고, 과거 연인들에게도 유별난 사랑을 받아왔다. 화장 안한 맨 얼굴을 사랑해 주며 보고 싶단 한마디에 바로 달려와주던 사람들. 항상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표정은 애정 어린 눈빛과 볼을 콕 찌르는 미소뿐이었다. 그들 앞에선 나는 장난이 가득하고 어리광 부리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편의점 컵라면 하나에 밤을 지새우고, 더운 여름 놓지 않는 손으로 애를 먹고, 안겨있는 포근한 품은 두근대는 심장 소리로 가득했던 지난날의 추억들. 그런 시간들이 가득했던 나는 누구보다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들과 영원함을 약속하기엔 두려웠던 나는 그들을 떠나보냈고, 떠나간 그들이 남겨놓은 추억은 날 그들처럼 사랑하게 했다. 그들의 사랑의 형태를 영원히 동경하게 되는, 아름다운 저주에 걸린 느낌이었다.


헌신적인 그들의 사랑은 날 헌신과 건조 사이를 줄타기 하게 만들었다. 어느순간 헌신할수록 나는 건조해져 갔다. 욕심은 커지고, 들키기 싫어 애써 건조한 척. 내 사랑의 형태는 과거 연인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님 깨달음을 통한 승화의 과정일까. 후회 없는 결말을 위한 이기적인 헌신은 미워할 수 없는 저주와 같았다.


누군갈 열렬히 사랑하는 내 모습이 밉지 않다. 혼자가 제일 편하지만, 그래도 사랑을 꾸준히 하고 싶은 욕심 가득한 나. 나는 그런 내가 참 좋다.


계절마다 사랑하는 이가 달랐던 나에게 모든 계절을 빼앗아 갈 어떤 이를 갈망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나의 삽질의 과정이 유쾌하게 느껴지는 요즘, 모든 계절을 가져갈 어떤 이에게 조잘조잘 떠들고 싶다. 우리의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과거 연인들의 이야기를 나눠도 밉지 않을 만큼 믿음 가득한 사랑 안에서, 술향 가득한 얼얼한 볼로 조잘조잘 -.


생각이 많은 날, 산책하며 누군지 모를 미래의 사람에게 항상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랑을 해왔고요. 저는 당신을 이런 태도로 대하고 있어요. 이런 상처가 있지만, 이게 나를 이렇게 성장을 시켜줬어요. 서로의 호시절에 우리가 만나, 메모장에만 적어뒀던 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나의 행복은 편안함과 자유함이 가득한 하루에서 나온다.

난, 염일한 삶을 원한다.


ps.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어느 날, 편안한 마음과 울리는 노래, 커피향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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