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설정과 발전 또는 소멸에 대한 생각들
보통의 사람들은 권위 있는 상이 주는 위엄이나 신뢰로 그런 상을 수상한 창작자나 창작물에 훨씬 더 호기심을 갖게 되어 결과물에 대한 정보를 리서치하거나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마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최고로 인정받은 품질에 대한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감각 수준을 가늠해보고도 싶고 때론 삶의 질적여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한몫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 트렌드가 미슐랭선정식당이나 노벨문학상수상작, 깐느나 아카데미작품상영화에 군중심리도 작동하여 더 열성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것 같다.
나 역시 개인적 취미와 맞물려 그런 트렌드적소비에 관심이 갈 때가 있는데 항상 기대치를 충족하는 것도 아닌 것이 사람마다 지향하는 세계나 감각은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락의 해부>라는 영화도 칸느그랑프리수상작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볼 생각을 하지 않았거나 변화무쌍한 전개방식이나 아주 서정적인 미장센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정주행 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관개봉시에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포기하고 있다가 며칠 전 OTT로 보게 된 것이 미루어두었던 숙제를 한 기분과 더불어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몰입감을 주어 이영화로 인해 오랜만에 영화적 갈증을 풀었던 시간이었다.
이영화의 화두는 인간관계, 가족관계, 특히 부부관계의 오묘하고 절묘한 고차방정식을 풀어가기 위한 콜라보가 얼마나 자기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예시 같은 영화다.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과 법정드라마를 접목한 스토리텔링으로 자칫 지루함이나 난해한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지만 여러 인간관계 중에서 기혼자라면 예측되는 회피하기도 어렵고 난제에 맞닥뜨리면 엉켜진 실타래 같은 부부관계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점점 일상화되는듯한 이혼추세나 부부간의 강력범죄의 개연성을 엿보는 듯한 상황전개가 전체적인 극의 흐름인데 프랑스남자와 독일여자가 프랑스의 외딴 산악지역의 별장 같은 집에서 펼쳐지는 부부간 갈등상황이나 해소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표출을 동반한 물리적인 충돌을 보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의 세계나 인간의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이질 감 없이 극전개에 몰입하게 된다.
연애는 사적인관계라면 결혼은 사회적 관계로의 전환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최소단위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수행과 더불어 가족이 당면한 과제들을 때론 협업하며 해결해나가야만 하는데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을 균형감 있게 수행하여 가족구성원 그 누구도 큰 불만 없이 화목한 가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전개방식은 초반에 한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인 주인공이 자신의 집에서 추락사한 장면으로 파국을 보여주고서 죽음의 원인이 단순한 실족사나 자살인지 아내에 의한 살해인지를 둘러싼 수사와 법정공방이 주된 내용이다.
확실한 물증이 없다 보니 어느 경우도 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추락의 원인을 해부하듯이 단서가 될 만한 작은 퍼즐 한 조각이라도 찾아서 전체퍼즐을 맞춰 죽음의 실체를 밝히려는 법조계종사자들의 치밀하고 타당성 있는 추궁과 담담하면서 냉정한 자세로 자신을 변론하는 아내와 변호사들의 법적공방이 짜임새 있고 설득력 있게 극후반까지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부모와 함께 살면서 누구보다 부모의 생활 속에서의 역학관계를 잘 알고 있던 11살 시각장애인 아들의 고심 끝에 결정한 법정에서의 마지막증언이 재판결과를 좌우하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약간의 심증은 있지만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많은 청춘남녀들이 연애기간이 5년 이상 10년 정도 된 주변인들이나 유명인들마저도 1년이 채 되지 않는 결혼기간을 보내고서 부부관계가 소멸됐다는 소식을 접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며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만큼 부부의 세계는 천차만별이고 두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라서 쉽게 예단하기 힘든 영역이다.
연애는 두 청춘남녀가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으면 더욱 좋지만 없어도 나름 애틋한 마음으로 인생의 유희를 추구하며 막연히 미래를 그려보는 1차 방정식 수준의 난이도라면 결혼생활은 현존하는 가사노동과 양육의 적절한 분담, 각자의 사회적 성취를 위한 노력과 가족을 위한 시간의 분배,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성, 각자 고유의 가치관을 갖고서 가족부양을 위한 다양한 과업의 합리적 결정, 다른 이성에 대해선 레드라인설정과 준수 등등 난이도최상의 고차방정식을 균형감 있고 슬기롭게 풀어나가야만 진정한 백년해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둘 중 한 명이 현생에선 망했다고 체념하며 헌신적인스탠스를 갖고 살아가면 부부관계는 유지되겠지만 관계의 성숙과 행복과는 괴리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영화의 메시지와도 부합되며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주제어를 한 문장으로 축약하라면 나는 예전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에서 보았던 이 글귀가 떠오른다.
"미움과 다툼은 잡초처럼 저절로 나지만, 사랑은 심고 가꾸어야 거둬들일 수 있다."
그 사랑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상대에게 뭔가를 해줄 때 자신도 행복하다면 그게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