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이런 말을 했었다.
" 나는 예수는 믿지만 교회는 안 믿는다. " 라고
나도 이 세상에 신 같은 절대자는 있다고 막연히 생각은 하지만 누군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지금도 나신교(I believe me)라고 유머러스하게 둘러댄다.
그래도 종교적인 성향은 불교 쪽에 가까운 편인데 그건 어려서부터 절에 다니시는 어머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종교가 불교라고 내게 부처를 믿으라고 설득하신 적은 없으시다 다만 세상 살기가 힘들 때엔 가까운 절에 가서 수양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란 말씀을 하셔서 여행 중에도 절이 나타나면 참선하고 소박하게 시주하는 것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의식 중의 하나이다.
오래전 법정스님은 세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서 이 세상을 떠났다.
법정스님이 속세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무소유'라는 화두를 이 세상에 글로써 던지고 자신도 철저히 몸소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앞만 보고 달리는데 그건 아마도 경쟁에서 뒤처지면 불행해진다는 조바심과 우리 정서의 기저에 남과 비교하는 삶으로 행복의 기준을 삼는 측면이 있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이나 성철스님 같은 진정한 종교인이나 많은 수필가들이 세인들의 인생살이에 여백의 미를 알려주고 가끔씩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면서 인간적으로 살아가라고 사색하게 만드는 화두를 던져준다.
난 구도자의 길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경이로움과 애잔함을 함께 느낀다. 그네들은 세인들이 흔히 말하는 촛불같이 자신을 불태워 점점 어두워져 가는 이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절대자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험란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하지만 종교도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구조라 그런지 주변에 종교가 있다고 종교시설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 중에 진정 박애정신이나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어는 종교인이 말하기를 신앙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특정 종교의 신을 보스처럼 모시기만 해서야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신앙생활과 자신의 삶의 불일치에서 종교의 진정한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버린 거라는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선 미국의 레전드급 야구선수인 '클레이튼 커쇼'가 한 말인 " 난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지 않는다. 그저 크리스천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려 노력을 할 뿐이다."라는 것이 내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법정이 말하는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버리라는 뜻이자 궁극적인 가르침은 세상을 착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라고 한다.
내 삶의 실천덕목으로 삼는 기준 중에 하나이긴 한데 자신은 얼마나 걸맞게 실행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면서 그런 범주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들을 보면 마음속에서 손절하는 부작용으로 고독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요즘은 내 삶의 방식이나 인간에 대한 태도에 신념에 가까운 틀이 단점같이 느껴지고 두리뭉실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불편감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삶의 코드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얼마 전 청소년시절의 동창을 경조사자리에서 만나 근처 카페에서 경의롭게 술 없이 3시간 가까이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내겐 카타르시스도 느끼며 기분이 상쾌해지는 충만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행복은 산 정상에서 느끼는 잠깐의 만족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길에서 느끼는 희망이다. 지금 걷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희망이 있다면 불행하지 않다.'
내 인생길에게도 묻고 싶어진다. 희망이 있는 길을 걷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