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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

by 김현석

어쩌다 이순의 나이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가끔은 젊은 날 좋아했거나 특별한 추억이 묻어있는 팝송이나 영화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20대 감성 그대로 가슴이 뭉클한 느낌을 받으며 잠시나마 추억여행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여행은 돈으론 살 수없고 학습될 수도 없는 정서적 영역일 텐데 아직도 가슴 한편에 살아남아있음에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가슴이 차가운 사람은 인생을 반만 살다가 가는 것이다."라는 표현의 함의에 너무나 동감하는 편이다.


젊은 시절엔 학연이나 사회적 연고가 있으면 그런 것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며 교류를 이어갔지만 언제부턴가 감성적 공감대형성이 안되어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으면 최소한 그런 만남을 주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내는 가끔 이런 나의 성향을 보면서 뭉퉁그려 몽상가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사실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나의 심오한 해석과 가치추구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스스로 위로할 때가 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군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인도영화 <내 이름은 칸>을 보면 세상에 반은 좋은 사람 반은 나쁜 사람이니 조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어머니가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나 역시 세상살이가 시니컬해지면 다양한 분류체계로 인간군상을 분류하며 내 삶의 고뇌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으려 상상놀이를 할 때가 있다.

그동안 다양한 분류를 해 보았지만 예전에 내 일터 주변의 쓰레기를 주우며 들었던 생각은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과 쓰레기를 줍는 인간' 풀어쓰자면 지구별을 아프게 하는 인간과 그 지구별을 치유하려고 애쓰는 인간, 평생을 남에게 민폐를 주는 인간과 타인의 행복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슬쩍 누리는 인간.

모든 인간이 스스로 선택해서 이 세상살이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가거나 찾아가는 여정의 총합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어느 작가는 시니컬하게도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한부인생이네 사형수네 하면서 서글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종말이 있다면 장기기증하는 사형수의 삶도 외롭지만은 않은 삶이지 않을까.

내가 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느덧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멋지게 이 세상에 존재감을 보여주고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의리와 보은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식은 기본소양이자 덕목이고, 또 하나를 들라면 내 일터에서 나에 대한 호기심과 칭찬을 아낌없이 표현해 주는 우리 아이들.

내가 살면서 요즘 내가 받는 칭찬과 사랑의 한 80프로는 네다섯 살 꼬맹이들로부터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이 순수한 아이들로부터 배운다.

세상은 사막이고 인간은 각자의 섬에서 살고 있는 외로운 존재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간으로 이 세상을 왔다 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간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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