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아무리 긴 시간을 이 세상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삶의 내공을 쌓아도 항상 슬기롭게 살아갈 순 없고 어느 순간 사소한 것에도 감정조절을 잘 못하거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미워하게 되는 어렸을 적 미성숙하고 퇴행적인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자주 있다.
세월이 흘러 황혼기에 접어들어도 삶이 한동안 이어질 것 같아서인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을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으며 특별히 자신을 수련하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들을 보내지 않으면 그런 능력이 저절로 생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
원래 그런 기질이나 성향이 있기는 했지만 젊은 시절엔 안정된 삶을 위한 과업들을 조바심을 갖고서 수행하느라 큰 관심을 두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심리학이나 철학적인 분야의 명제나 가치에 소중함을 느끼며 세상의 이치도 다시 배우고 평온한 감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를 보면 이런 주옥같은 글들이 있다.
"철학은 네게 많은 것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줄 뿐 아니라, 번잡한 일상에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항상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순간 외에 다른 때를 살 수 없으며 지금의 삶조차도 매 순간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해서인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꿈꾸었고 재능도 있는 분야에서 사회적인 역할과 기여를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의 주인이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차선의 인생길들을 계속가게 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기회가 잘 맞아떨어지면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로 리셋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후자와 유사한 경우인데 지금생각해 봐도 청소년기에 세상물정도 잘 모르고 명확한 꿈은 없었지만 고교학생주임의 이과를 선택해서 공대를 나와야 대한민국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때문에 취업도 잘되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된다는 이과선택을 독려하는 훈화를 듣고서 평소에 자신의 적성을 생각해 문과선택을 염두에 두었던 한 아이는 순식간에 이과를 선택해 공대를 진학하게 된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보면 십 대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나 원가족에게 누가 되지 않고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사회적 성취를 위해 그 누구와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했던 그 아이가 애틋하면서 대견스럽게 생각되어질 때가 있다.
그 덕분에 문무를 겸비하게 되는 인생을 살았던 것 같긴 한데 젊어서는 양립하기 힘든 두 분야의 충돌과 갈등으로 덜커덩거리는 일상에서의 임상경험들이 철학이나 심리학의 논제나 명제에 이해의 폭이 넓혀진 게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진단을 갖고 있다.
"죽지만 않는다면 역경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의미의 '니체'의 격언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시련은 진행 중에는 너무나 가혹해 삶의 끈을 하찮게 생각해 놓아주고 싶을 때도 있는데 막상 그 시간이 지나가면 삶의 자양분이 되어 가시밭길 같은 인생길을 만났을 때 운동화 같은 역할이 돼 주기도 한다.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나 자신의 판단의 오류로 시행착오나 실패의 경험들로 인한 반면교사가 축적되다 보니 이제는 고대부터 인간이 살아오면서 세상에 공표된 격언이나 짧은 한 단어에도 세상을, 인간을 관통하는 촌철살인 같은 숨은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를 포함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글귀에 감화되어 모두 다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게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쫒으며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없어 보이는 인간의 무리에서는 벗어나 세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조하며 타인의 정서도 조망할 줄 아는 인생의 지표는 갖고 살아가는데 도움은 줄 것이다.
- 대표적 라틴어 세 구절
카르페 디엠
(지금의 삶을 살아라)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인간의 대표적 심리를
묘사한 사자성어
소탐대실, 동상이몽, 아전인수
적반하장, 토사구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