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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Sep 27. 2023

생일 선물로 에세이 같은 걸 선물한다는 건

그녀는 그때 날 더이상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 말은 나의 머리를 쎄게 강타했다. 그 말을 듣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날은, 내가 군 휴가를 나오고 이틀째가 되는 날이였다. 휴가를 나오기 며칠 전, 이제는 연락이 끊겨버린 재수하기 전 대학의 한 누나가  문득 생각이 났다. 수년의 정적으로 가득한 카톡방을 억지로 채울 때 누구나 그렇듯, 비굴하고 자신없는 말투로 ‘잘 지내냐고.’휴가를 나오는데 한번 보고 싶다‘ 며 진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를 만난건  성신여대 앞 번화가였다. 우린 언제나 만날때면 성신여대에 있는 마라탕 집에서, 꿔바로우를 추가헤서 먹는다. 꿔바로우를 집으며 그녀는 내게  ’이번에는 어떤 게 힘들어서 나를 찾아왔냐‘고 물었다. 약간의 웃음기가 들어 있었으나, 역시나 농담이라기엔  날카로운 말이었다. 대충 둘러대며 나는 정말 갑자기 생각나서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라탕을 먹고 , 자유의 여신상 커피 얼음이 둥둥 떠있어 조금은 부담스러운 아메리카노가 나오는 커피집에 들렀다. 대충 아무거나 커피를 시키고 앉았다. 말은 진부하고 표면적으로 흘러갔다. 이런 저런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그 중에 어떤 말들도 진심을 담고 있지 않았다. 마치 우리 대화는 소개팅을 하는 남녀의 탐색전에서 나올 만한 것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결심한 듯, 진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는 우울하고 힘들 때만 내 친구였어.“ 너는 그럴 때만 우리를 찾아와 , 기쁠 때의 모습은 인스타에 화려하게 전시하고서는 말이야. 난 조금 억울해져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기쁠 때의 나는 내가 아니였으니까, 우울할 때의 나만 진짜 나였어, 그래서 날 진심으로 대해주는 너를 찾아왔나 보지.’ 그런 종류의 말을 하려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는 입을 닫았다. 그녀는 그런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혹시 저번 내 생일 때 너가 나한테 무슨 선물을 줬었는 지 기억나?’ . 머리가 새하얘졌다. 사실 그녀에게 선물을 건넨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기 전 그녀가 먼저 입을 뗐다. “에세이였어. 에세이..” 3년 전, 그녀와 한참 많은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내게 에세이 같은 종류를 정말 싫어한다고 했다. 힘들어도 괜찮아.. 같은 상투적이고 전혀 위로도 발전도 없는 그런 에세이에 혐오감을 내비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공룡이 예쁘게 그려진 그런 종류의 에세이를 선물했던 것이다. 별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생일이었고, 난 선물을 줘야 했고, 그렇게 선물을 전달했다. 난 선물이란건, 어쨌든 종류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왜?’ 라는 질문이  나오는 걸 꾹 참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난, 너를 더이상 만나지 않기로 했어. 그래도 내가 여길 나온 건 너가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였고. 하지만 너가 만약 오늘 똑같이 너의 힘듦을 이야기했다면 나는 너를 더이상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을지도 몰라.”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 대사가 떠올랐다. ‘나의 해방일지’ 라는 작품에서, 진정한 관계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독백하는 염미정(김지원 분)에게 구씨(손석구 분)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는? 너는 누구 채워 준 적 있어?‘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난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였던 적이 있었나?  사실 공룡 에세이든 선물이 어떤 종류이든 그건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 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이 나서 뒤져 봤던, 그녀가 내게 줬던 선물함에는 한우 세트라던가, 눈 마사지와 같은 값이 나가고 나의 상황을 충분히 생각했던 선물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선물을 건넸나? 내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인기 있다는 아무 책이나 선물했던 건 아니였나?’ 난 왜 그녀가 나를 그만 만나려 했는 지 알 것 같았다.


이전의 나는 나만 소중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내게 뭘 줄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그러고서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길 바랐다. 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떠나간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난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게 꼬깃한 5만원을 건넸던 고모에게는 매달 500만원이 넘는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날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줬던 엄마 아빠에게는 1달에 1번 퍼스트석 비행기를 태워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군대에 있었던 내게 군인이 무슨 돈이 있냐며 밥을 사줬던 이들에게는 만날때마다 서울에서 제일 비싼 밥을 사주고 싶었다. 난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보다 바보 같은 마음이 있을까. 사실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의 경제적인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지 않을 만한 정신적 안정을 갖춘 사람만이 남을 더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룡 에세이 같은 걸 선물했던 그녀에게 나는, 내 싸인이 듬뿍 담긴 내 에세이를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힘들어도 괜찮아’ 같이 가벼운 메세지가 담기지 않은. 내 생각과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들과 생각들과 대화들도 담긴 그런 의미있는 에세이를 선물하고 싶어졌다. 그런 에세이라면 그녀가 나를 보지 않기로 다짐하지 않지 않을까. 날 좀 더 오래 보려 하지 않을까? 그런 바보 같은 생각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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