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자까 Mar 16. 2024

인생의 무의미를 깨부수는 방법.

‘초인’이 되어라, 한계를 깨부수어라. 니체가 내게 말했다.

니체를 처음 만난 건 , 어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독립영화로부터였다.  좋은 대학에 나와 자신만만했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렇지만 5년이 넘는 동안 그녀를 붙여주지 않는 시험과 씨름 중이었다. 끝없이 좌절하던 그녀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공교롭게도 ‘달리기’였다. 여느 평범한 달리기 크루를 보며 그녀는 그들이 참 자유로워 보였다.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왠지 모를 희망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녀는 달리기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다. 어떤 믿음도 느낌도 무의미하다. 10년이 넘는 시험을 통해 얻지 못했던 깨달음을 그녀는 달리기를 통하여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의 이 모습을 ‘초인’의 모습으로 묘사하며 니체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을 듣고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다, 또 시간이 흘러 어느 시기에는 니체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 시점은 언제나 실업률과 물가등이 치솟는 어려운 시기였다. 내가 아는 니체는 강렬히 도 냉정한 사람이었다. 왜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힘든 시기를 거칠 때 ‘힘들어도 괜찮아’를 외치는 따뜻한 에세이보다 니체의 철학책을 찾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나도 인생의 어떤 시점에, 그의 사상의 핵심을 꿰뚫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그 어떤 시점에 말이다. 사실 그때는 이 경험과 깨달음을 이름 짓기 어려워 그대로 두었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날 다시 찬찬히 돌아볼 시점이 있을 때 나는 이 깨달음이 니체 철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무릇 17개월 이전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진주의 어느 한 훈련소에 입소한 김훈민은 덜컥 한 소대의 대표로 발탁되게 된다. 그는 어디를 이동하든 간에 그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목소리를 내야 했지만 그는 목소리가 여리고 작았다. 또한 그는 소대대표의 작은 목소리로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에 견딜 만큼 강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풀이 죽어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리 강한 사람이 못되니까 소대대표를 할 만한 인물은 못되지’. 이건 그가 짧은 20 남짓한 세월을 살아오며 해왔던 생각이었으니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어느 날은 3킬로 전투 뜀걸음이 예정되어 있었다. 총을 메고, 전투화를 신고, (소대대표였던 나는 구호까지 붙이며 발걸음을 했어야 했다.) 3킬로를 달리는 훈련이었다. 소대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던 2킬로미터 지점을 달리면서 나 또한 충분히 달렸다고 생각하며 그만 둘 생각을 하는데 그 시점에 갑자기 방바닥에 누워있는 초라한 과거의 내가 머리를 스쳐갔다. 실패와 좌절에 끝내 실망하여 인생을 원망하고 있는 ‘패배자로서의 나’ 말이다. 난 갑자기 마음이 벅차올랐다. ‘다시 그때의 나로 절대로 돌아가지 않으리’. 그때 난 니체가 말한 ‘초인’에 가까웠으려나. 옆에 있는 쓰러지려는 친구의 총까지 들쳐 매고 난 더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뛰었다. 그 길로 3킬로를 가볍게 완주했고, 난 가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의 의미를 그때 깨달았다.


무의미가 창궐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사람들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뭐든 하려고 치면 유튜브에는 ‘00 하지 마세요’라는 문장만 나뒹군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뭐든 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 청년들의 구직 희망률이 점점 낮아지는 건 이런 사회 분위기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니체는 그 시절에도 존재했던 ‘허무주의자’ 들을 향해 의미는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우리는 우주의 그 광대함에 비해 먼지 같은 미천한 존재이지만, 또 그 미천함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가냘픈 믿음으로, 확신으로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거지 같은 운명을 그리고 고난을 끝없이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주체성을 획득하고 허무감을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 철학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앞에 언급했던 그녀의 ‘달리는 행위’가 왜 초인과 가까운 모습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달리는 행위를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주체적으로 이겨내고 있었고 , 그것은 그녀가 고시 준비를 하며 마주했던 끝없는 무의미함과 허무함으로부터 탈피하는 열쇠가 되어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나는 훈련소에서 겪었던 경험 이후, 한 번도 내게 닥친 시련에 내 운명을 혹은 누군가를 원망했던 적은 없다. 그걸 원망하며 앉아 있기에 내 인생이 너무나도 짧고 소중하게 여겨졌던 탓이었으며, (또 가장 중요한 깨달음인) 울며 앉아 있다고 아무도 대신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난 그 시절 겪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매일 3킬로씩 달리며 그 초월경험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시점 이후 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끝없이 내 앞에 놓인 고난들과 문제들을 해결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삶은 물살과 같아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극복하며 올라야 한’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내게 말해주었다.

이전 08화 디지털 디톡스 그 이후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