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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여행 - 2일차

타지에서 한국인들을 찾는 방법

by 훈자까

대만의 날씨는 굉장히 따뜻했다. 거의 가을 말미에 산 탓에 한두 번밖에 입지 못한 갈색 스웨이드를 혹시 모를까 봐 챙겨왔는데, 대만에서는 충분히 입을 수 있는 기온이었다.Y의 기숙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는 그제서야 주변 풍경이 보인다. 기숙사는 너무 쾌청하다. 여러 다른 단어를 써보고 지워보지만, 그 단어만큼 기숙사를 설명할 단어는 없다. 대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언어로 떠들며 지나가고, 운동장에는 아침 일찍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넓은 운동장을 어떤 이들은 뛰고, 키가 아주 큰 철봉을 누군가는 탄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타지 사람들의 건강한 삶에 작은 존경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행 전에 Y는 내게 대만의 도심과 소도시 중 어떤 것을 보고 싶은지 물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도심이라고 대답한다. 매일 도심에 살면서 왜 여행에 와서까지 도심을 구경하고 싶냐고 괜한 핀잔을 Y는 내게 준다. 약간의 홍대병 증세일지 모르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가는 관광지는 가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온 ‘타지’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다른 나라에서 완전히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때문일 것이다. 나는 대만의 ‘회사원 1’, ‘자영업자 1’, ‘변호사 1’을 보고 싶다. 아침에 무거운 머리를 이기지 못하며 출근하고, 따분한 일을 반복하며, 퇴근길에는 발 디딜 틈 없는 곳에서 잠깐 기대어 휴식하는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런 모습이 대만의 도심에 있기를 기대하며 도심을 여행한다.


Y는 자전거를 내게 빌려준다. 우리나라에 쉽게 알려진 따릉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빌리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대만의 자전거 대여는 30분이 무료라는 것이다. 30분 이내로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빌리는 것을 반복한다면, 돈이 전혀 나가지 않는다(매일매일 쉽게 버려졌던 내 아까운 1000원…). 얼른 이 좋은 제도가 한국에도 도입되기를 바라며 자전거에 오른다. 여행지에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대만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한다. “겨울에는 반드시 대만으로 도망가야 해.” 그도 그럴 것이, 대만의 낮 기온은 10도를 넘는다(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대만 사람들에게는 추운 날씨인지, 현지인들은 저마다 다른 색의 경량 패딩을 입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제 가을이 없다고 하니,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면 겨울의 대만으로 오면 될 것이다.‘가을의 바람을 맞으며 타는 자전거’라니, 꿈만 같아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는다. 날씨에 대한 만족감이 약간의 지루함으로 바뀔 때쯤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대만의 ‘타이페이’라는 중심 도시에 있음에도, 풍경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세탁물을 바깥에 널어놓은 주택들이 끝없이 이어져,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개발 대상 마을이 이어지다가 어느 시점에는 ‘여의도 느낌’의 높고 큰 은행 건물들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비유를 하자면, 서울 도시에 전라도 완도와 서울의 여의도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도심에 위치한 작은 시장에 들러 진정한 대만을 맛보기로 한다. 육포 코너에 들러 누가 봐도 관광객 모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옆집 사장님이 내게 수줍게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Y에게 “사장님이 나를 어떻게 알아보셨을까?”라고 묻는데, Y는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으며 “여기 있는 누가 너처럼 옷을 차려입었냐”라고 비웃듯이 대답한다. 그 비웃음을 듣고 생각해보니, 나조차도 ‘한국인’과 ‘non-한국인’을 현지에서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행에 민감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의 가을 차림은 사실 전형적인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 만약 한 가지의 기준을 더한다면 한국인들은 “최선을 다해 입는다는 것”이다. 특히 여행지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한국인들은 이 온화한 날씨에도 코트를 입고 긴 가죽 부츠를 신는다. 그것도 아니면 힙하게 벌룬 핏의 바지를 입고 비니를 착용하기도 한다.시장을 나와서 Y와 함께 한국인들만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인들은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해”, “그렇지만, 그 덕분에 남들에게 피해를 덜 주기도 하니까”, “자유롭지가 않잖아”, “너 자유롭지만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는 중국에서 살아볼래?” 이런 실없는 이야기들을 하며 웃는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대만에서 한국인 찾기 프로젝트에 몰두하기로 결심한다.


여자들을 찾는 기준이 화려한 7단계 한국식 메이크업이라면, 남자들을 찾는 기준은 과도하게 깔끔하게 정리된 옆머리이다. 무질서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다운펌된 옆머리는, 무엇인가 모를 위화감을 주기도 한다. 그들은 주로 와이드한 바지를 입고, 셔츠를 레이어드한 후드티 패션을 선보인다. 왼쪽 팔에는 언제나 검은 화면의 애플워치가 착용되어 있다.다시 한 번,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들의(나를 포함한) 전형성을 떠올리며 따뜻한 대만의 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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