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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Aug 14. 2023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어린 날의 상처와 극복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어느 날은 벌떡 일어나 그한테 향한다. 뚜벅뚜벅 걸어간다. 종이치고 모두가 앉아 공부를 시작할 시간이다. 나는 그에 앞에 서서 이야기한다. 별 생각은 없었다. “너 내가 좃같이 보이냐?” 갑자기 올라온 말이 그대로 나왔다. 감정조절 따위 어리니까 할 필요 없지 않은가. 50명이 넘는 기숙사 친구들이 나를 의아하게 또는 충격적으로 바라본다. 항상 웃고 욕을 잘하지도 않는 인간이 갑작스럽게 욕을 할 때 사람들은 굉장히 놀라기 마련이다. 내 고등학교 시절에는 언제나 상처를 참아야 했다.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 그지 같은 사회는 언제나 착한 사람들을 피해 입히는 시스템이다. 착한 사람이 착하게 보호받는 방법 따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배운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친절히 대해주고, 공감해 주고 ,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라는 거. 그래서 누군가가 내가 수학 5등급이라는 가장 큰 약점을 공격해 냈을 때도, 서운하지 않게 그 친구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순간들 순간들을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 그 수모를 그 상처를 어떻게 버텼는데 어떻게 네가 너 따위가 나한테 “나는 훈민이 처럼은 안 살아야겠다고” 말할 수 있냐.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엄청 웃겼다. 뭐가 웃겼는지는 모르겠는데 뭐가 엄청 웃겼다.

선생님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혼내려고. 근데 갑자기 엄청 슬픈 거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그렇게 서서 혼자서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지나고 보니 우울증이었나 보다. 조울증이었던 것 같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공부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 서운한 일이 많아질수록 분명 날 지킬 수 있는 건

그런 종류의 공부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네가 나를 괴롭힌다고? 그래 그럼 내가 너보다 열심히 해서 성공할게 이런 마인드, 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걸 보이려고 노력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미친 사람처럼  책을 붙잡고 있으면 덜 아플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새벽에  뭔지 모를 시끄러운 다툼 소리에 일어난다.

부모님의 싸움 소리다. 나는 그게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난 어린 시절 아빠가 술 먹고 들어오는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었다. 진짜 우리 엄마를 때렸는지 아니면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폭력의 모습처럼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난 언제나 술 먹은 아빠가 엄마를 때릴까 봐 무서웠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언제 든 간에 엄마가 더 잘못했던 그렇지 않던 나는 아빠가 미웠다 아빠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성들이 얼마나 그런 종류의 ‘힘’에 무력한 지 알고 있다. 성평등 페미니즘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나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폭력에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하고 있다. 고등학교 학년이 올라갈수록 둘의 다툼은 심해졌었다. 그리고 언젠가, 집을 나오며  결혼이란 건 끔찍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크면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생각이 아직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이들은 쉽게 상처 입기 때문이다. 난 그때의 상처를 아직 간직하고 산다.


그런 고통들을 난 내가 성공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그 고통들 따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스스로 가난했고 무력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에 그렇게 진심이었다. 그러고 나서 수능이 끝나고 나는 내 몸뚱이와 내 같잖은 공부실력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고 방향성을 잃었다. 난 내 인생을 그런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는데 난 똑같았다.


그래서 그 오랜 방황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왜 그리 방황했는지 지 그 이유를 갑자기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는 알고 있다. 그 고통들은 나를 너무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난 이 군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열심히 산다. 내 하루는 남들이 자고 있는 5시에 시작된다. 이 글도 그 시간에 쓰고 있다. 부모님이 소리 지르고 있고 방 안에서 할머니는 죽어가며 신음소리를 내는 그 마루에서 법과 정치 20문제를 눈 깜짝하지 않고 20분 만에 풀어내던 그 독함이 있는 사람이다. 난 그렇게 성장해 왔다.  


그렇게 살아왔으니, 난 무조건 행복해져야 한다. 아니 어쩌면 행복이란 건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성공이란 건 있으니까. 난 성공할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성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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