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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Apr 09. 2016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갈매기 조나단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는 태평양은 조금 특별합니다. 금문교 아래 좁은 골목을 헤집고 들어온 바다가 샌프란시스코만 안에 갇혀 조용하고 평온하기만 합니다. 그곳엔 언제나 금문교와 알카트라즈를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그곳의 진짜 주인들은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입니다. 갈매기들은 떼 지어 날면서 금문교를 위로 아래로 지납니다. 죄수들이 죽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던 알카트라즈를 갈매기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들락거립니다. 사람들이 던져 주는 먹이를 탐내느라 부둣가에 내려앉았다가 어느덧 휘익 다시 날아오르면 눈 깜박할 사이에 관광유람선 위를 지납니다. 마치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날았던 것처럼......


©오주현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Richard Bach의 유명한 소설, Jonathan Livingston Seagull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나 많이 보고 들었던 구절이라 책의 내용도 잘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이 짧은 철학소설을 꼼꼼히 곱씹어 가며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사실 그중의 하나입니다.

©오주현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동료 갈매기들을 떠나서 조나단은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높이 날아 올라 죽을지도 모르는 속도로 하강 비행을 연습합니다. 치앙이라는 스승을 만난 조나단은 진정으로 자신이 추구하던 존재와 사랑의 의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어린 갈매기들을 가르칩니다. 그런 조나단의 철학은 아래의 구절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 하나하나는 위대한 갈매기의 다른 모습이자, 한없는 자유의 표상이란다.”

“좋아, 플레처. 기억하고 있나? 우리의 육체는 생각 그 자체이며,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을…”

“왜 그럴까?” 하고 조나단은 의아해했다. “한 마리의 새에게 그가 자유롭고, 조금만 시간을 들여 연습하면 그것을 혼자 자신의 힘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니? 이런 일이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

©오주현

그런데 이런 존재론적인 교훈 이외에 이 책은 인류의 보편적 지향이었던 사랑에 대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가르쳐 줍니다. 비행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극복하고 하늘나라와 같은 그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느냐는 조나단의 질문에 치앙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조나단, 그런 곳은 없단다. 하늘나라란 어떤 장소도 아니고 시간도 아니지. 다만 완전하게 되는 것이 곧 하늘나라인 셈이지.”

“조나단” 하고 그는 말했다. 이것이 그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오주현

후에 조나단은 자신의 제자 플레처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 자네가 물론 증오나 악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러나 자네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진정한 갈매기의 모습을 보아야 하며, 그들 모두에게 내재된 선량함을 볼 수 있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돼. 또한 그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지. 자네가 그 점을 터득하기만 하면,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야.”

그렇게 사랑을 이루어 낸 사람은 이제 다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터득한 기술이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되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자네에겐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아.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자네 스스로 매일 조금씩 더 진정한 자신을 찾아서, 바로 자신이 무한한 플레처라는 것을 발견해 가는 일이야. 그가 바로 너의 스승이지. 너는 그를 이해시키고, 그를 다스려야 해.”

“가엾은 플레처. 자네의 눈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저마다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해하며,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새롭게 보아야 해. 그러면 자네는 진정으로 나는 법을 알게 될 거야.”

©오주현

카메라 렌즈 속에서 저와 눈이 마주친 갈매기 한 마리가 제게 묻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지혜의 조나단을 찾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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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690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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