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에서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도 가끔 깊고 그윽한 커피 향을 만나면 쉽사리 매료되곤 합니다. 더구나 그 커피가 쓰지도 달지도 않은 기품 있는 맛을 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하물며 부드럽기까지 해서 고운 실크 스카프가 매끈한 살결 위로 스쳐 흐르는 것보다도 더 가볍게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면, 웬만해서는 커피를 칭찬하지 않는 저도 감탄을 내지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어느 도시보다도 커피점이 많은 서울에서도 그런 커피를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흔한 카톡을 주고받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작은 커피점을 찾아갔습니다. 양수리의 두물머리 바로 앞에 위치한 곳이라 날씨 좋은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시장통 거리에서 주말 오후 네 시면 문을 닫는 곳에 도착한 시간은 세 시가 훨씬 지났을 때입니다. 방앗간 한편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작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지만, 실제로 들어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더군요. 입구에 떡 진열대가 있고, 건너편 벽 앞으로 반짝반짝 잘 닦아 놓은 커피머신들이 줄지어 선 작은 부엌이 있고, 그 사이에 한 평이 채 될까 말까 한 공간에 손바닥만 한 탁자가 두 개가 양쪽 벽에 하나씩 기대어 있습니다. 네 사람이 앉으면 편안하고, 다섯 사람이 앉으면 다정하고, 여섯 사람이 앉으면 심하게 친해져야 하는 작은 공간인데, ‘이곳에서 어떻게 장사를 하셨길래 유명해졌나’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커피가 탁자 위에 올려진 순간 의문의 답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여태껏 마셔 본 커피 중에 단연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맛입니다.
저는 커피의 온도가 지나치게 뜨거우면 일단 그 집 커피를 맛보기도 전에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두꺼운 종이도 아닌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컵홀더를 통해서 느껴지는 커피의 온도가 마음에 딱 들었습니다. 최상의 로스팅을 통한 향이 코를 자극하는 순간 시지도 달지도 쓰지도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독특한 맛을 즐기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커피가 한 가지 맛을 진하게 내면 첫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다 마시지 못하겠더라고요. 은근한 가운데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이런 맛 저런 맛들이 하나씩 우러나야 제맛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마시면서 초콜릿, 딸기, 오렌지, 장미 등의 맛과 향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가격도 엄청 착하네요. 커피 원두 한 봉지를 구매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은 그냥 드린답니다.
잠시 앉아 있는 동안에 여러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와 커피를 주문합니다. 자주 오는 분들인지 주인장이 묻기도 전에 진한 맛, 연한 맛을 알아서 주문하네요. 주차장은 따로 없어도 테이크아웃을 기다려 받아갈 수 있도록 가게 앞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차가 밀리지 않는 주말 이른 아침이라면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싶은 방앗간 커피집입니다. 아침 7시부터 손님을 기다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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