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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Apr 13. 2016

지중해의 석양을 저녁 식탁에 초대하다!

Coco-Beach Restaurant, 니스, 프랑스

프로방스가 지중해로 스며들어가는 곳에 거꾸로 지중해를 품어 안듯이 자리를 잡은 햇살의 도시, 니스에 가면 관광객들은 게을러질 틈이 없습니다. 지중해의 파도 끝에 부서지는 햇살만 바라보고 있어도 황홀한 도시에,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건축물들이 도시 안팎으로 널려 있는 데다가, 주변의 작은 (도시라고 하기보다는) 마을들은 얼마나 또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지,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름들도 귓가에 그저 예술처럼 들립니다. 샤갈과 피카소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들도 빠지면 안 되죠. 아쉬운 것이 있다면 고운 모래 대신에 자갈이 깔린 해변가인데, 그곳에서조차도 남정네들은 눈이 돌아가는 소리를 옆사람이 들을까 봐 조심해야 합니다.

© 오주현
© 오주현

이런 재미나는 곳에서 기가 막힌 식당을 만난다면 그 여행은 더할 것이 없고 그 순간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니스에는 그런 식당이 길거리에 널려 있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니스의 동쪽 끝 절벽 위에 겨우 매달려있는 작은 식당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니스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두 도시를 양 옆에 끼고 있는데, 지중해안을 따라 서쪽으로는 영화제로 유명한 깐느가 있고 동쪽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도시국가, 모나코가 있습니다.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는 전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아름다운, 절벽을 지나는 자동차 도로가 셋이나 있어서 Les Trois Corniches라고 불립니다. 불과 50m 정도의 높이로 해수면을 스치듯 지나는 Low Corniche는 모나코의 별, 그레이스 켈리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도로인데, 그녀의 추모비가 있는 작은 마을, Villefranche를 지납니다. 중간 도로, 즉 Middle Corniche는 해발 500m 가까이 지나기 때문에 여러 주변 마을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Moyenne Corniche는 가장 넓고 좋은 도로이고 지중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지만 별 인기가 없습니다.

© 오주현
© 오주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아랫길에 올라서자마자 오른편 해안절벽을 향해서 내려서는 작은 길, Avenue Jean Lorrain를 타고 구시가지를 바라보며 내려오면 왼편 절벽 위에 걸터앉은 듯이 자리 잡은 Coco-Beach Restaurant를 만납니다. 홈페이지(http://www.cocobeach-restaurant.com/)에 소개된 것처럼 1936년에 개업했다는 이 식당은 사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답니다. 그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좁은 입구 양쪽 빛바랜 니스칠이 벗겨진 나무벽에는 마크 샤갈과 쟝 콕도가 다녀갔다는 서명도 보이고 파블로 피카소의 사진도 걸려 있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군요. 운이 좋아서 절벽 끝으로 삐져 나간 작은 방을 예약하시면 지중해 너머로 노을 지는 붉은 석양을 맘껏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Angels’ Bay 가운데로 삐쭉 나온 등대와 그 뒤로 보이는 니스의 구시가지가 석양에 물들면 황홀하다는 표현으로는 약간 부족합니다. 테라스에 앉아도 좋지만 한여름에는 내가 주문한 생선처럼 통구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 오주현

이곳의 메뉴 가운데 단연 일품은 즉석에서 고른 생선을 원하는 대로 구워주는 생선 그릴 요리입니다. 저는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John Dory를 골랐습니다.

© 오주현

한 바구니 담아 온 갖가지 생선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나서 주방의 냄새가 살살 번져 올 때쯤이면 도대체 어떻게 요리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기에 카메라를 들고 주방을 훔쳐보게 됩니다. 깔끔한 주방은 아직 식탁에 오르지도 않은 음식에 대한 신뢰를 무한으로 높여주기에 충분합니다.

© 오주현
© 오주현

이렇게 차려진 식탁에는 화려한 본차이나 접시는 필요 없습니다. 식탁 위에까지 길게 늘어진 지중해의 햇살은 물고기를 그려 넣은 둔탁한 모양의 접시조차도 인형의 집에 나오는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저녁식사에는 값비싼 보르도 와인이 아니라 그저 동네 가까운 곳에서 생산한다는 15 유로짜리 와인이 제격이라는 거죠. 햇살에 바사삭 부서진 소금기를 머금은 지중해의 바람을 만나면 어떤 와인이라도 단 오 분 안에 환상적인 맛과 향을 뿜어 냅니다. 이때쯤 되면,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아시아에는 왜 이런 햇살과 바다가 없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 오주현

석양을 따라 한껏 늘어진 배부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와 절벽 끝에 서면 니스에서 깐느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의 불빛들이 따라오라고 유혹합니다. 방금 계산한 저녁값을 서울 청담동의 유명 맛집들이나 홍콩의 광동식 해산물 식당과 비교하는 순간, 자갈밭에 살포시 다가왔다가 빠져나가는 파도소리가 한 잔 걸친 피아니스트가 울려대는 쇼팽의 녹턴처럼 행복하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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