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멕시코 출신 친구 덕에 갑자기, 그리고 편하게 멕시코 로드트립을 다녀올 수 있었다.
내가 지내던 샌디에이고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국경 근처의 아웃렛만 가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기도 할 정도.
기숙사 같은 건물에 사는 친구들과 드디어, 그곳에 가 봤다.
멕시코 국경을 넘는 순간.
짐 검사를 받고 하는 과정은 무서워서 차마 찍을 수가 없었지만, 차로 국경을 넘는 경험이 처음이라 짜릿했다.
차에 같이 탄 친구들과 국경을 넘고 소리를 내지르던 순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작은 일탈을 한 것 같은 느낌!
국경을 넘고서는 다들 긴장이 조금 풀려서 말도 많아지고 노래도 크게 틀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예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멈춰서 사진도 찍고, 커피를 사러 잠시 샛길로 빠지기도 했다.
방에 짐을 놓고 온 타코 플레이스! 타코도 너무 맛있었고, 수제 맥주도 맛있었다. '세비체'라는 새로운 음식도 도전했는데, 국물이 없는 상큼한 물회 같았다.
커피가 너무 필요해서 터키식 커피도 시켜 먹었는데, 같이 나온 디저트가 신기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아이가 겨울 여왕을 만나고 먹는 디저트라고 안드레아가 설명해줬다.
이쯤에서 양가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다른 대륙에 사는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만나는데 그 안에 우리를 관통하는 콘텐츠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탈리아에 있는 26살 남자, 한국에 있는 23살 여자, 멕시코에 사는 21살 여자, 미국에서 온 19살 여자 등등, 각기 다른 배경과 문화를 지닌 우리들이 모두 '나니아 연대기'라는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다니.
어떤 면으론 짜릿하다. 세계는 더 이상 분절된 사회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문화를 조금씩 공유하고 있고, 그래서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조금 어려울지라도. 같은 것을 보고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은 기묘하게 행복했다. 세상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함께 영화를 떠올리면서 '우와!' 하는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은, 옆자리의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웃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일이다. 우리는 또 어떤 것을 공유하게 될까?
그럼에도 어떤 면으론 무섭다. 기본적으로 우리를 관통하는 이 문화는 미국에서 기인한 상업주의적이고 문화 사대주의적인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렇다. cultural colonization이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 주변에 늘 있던 것이다. 이곳에서도 우리는 또 하나의 희생자다. 큰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까지 소유하게 되는 사회 구조의 희생자.
오늘도 해가 지고 나서 짙어지는 하늘색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제일 의지한 주선이와 같이 사진도 찍었다. 유일무이한 한국인들의 동맹이랄까?
물론 주선이는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유창하고 외국 문화권에도 익숙한 친구지만, 그래도 같은 곳에서 난 게 뭐라고, 이렇게 또 안도감을 준다. 그런 면에서 인간들을 가까워지게 하는데 공통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을 온 친구들도 국제 학생이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친해지지 않았을 테니까.
이번 여행에 온 9명은 나와 참 기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여기서 매우 중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안드레아, 안디, 레베카는 나와 늘 같이 놀던 친구들이다. '교환 생활에서 친구들이랑 놀았다'하면 거의 이 친구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 그에 반해 차를 같이 탔던 주선, Ken, 스미레, 비비안은 동양인 친구들로, 한국인 문화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대부분의 대화가 한국 콘텐츠와 아이돌이다.
두 그룹의 친구들과 다르게 친한 나는 어떤 위치를 가져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어쩐지 그 두 가지 특성이 다 좋았다. 안디, 안드레아와 늘 하듯 술을 마시면서 게임을 하는 것, 각 나라의 클럽 문화를 알려주는 것, 손하트를 하면서 서로에게 애교를 하는 것. 그리고 차에서는 케이팝 노래를 들으며 미니 파티를 하는 것, 잔잔한 얘기를 하는 것.
밤에는 내가 사진을 안 찍었지만,,, 장을 봐와서 집에서 놀았다. 마가리타도 만들어 먹고, 스피드 게임 형식의 보드게임도 하고, truth or dare도 했다. 난 겁 없이 Dare을 외쳐서 10초간 춤도 췄다(^^) Ritual 들으면서 떼창 한 것도 기억나고.... 주선이랑 내가 만든 마가리타가 너무 맛있어서 감동한 기억도 난다...
술을 먹어서인지, 신이 나서인지- 기억은 통합되지 않고 마디마디 잘려서 머리에 남게 되었다. 그래도 조각난 기억들이 하나같이 같은 즐거운 톤을 갖고 있어서, 아무렇게나 뭉쳐놓아도 이질감이 없는 느낌이다.
앞에선 나니아 연대기가 우리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밤에는 브레이킹 배드가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안드레아가 브레이킹 배드를 본다고 말하자마자, 놀라서 한국말로 '야 너 뭘 좀 안다~'라고 할 뻔했다. 26살에게 그 말은 적합하지 않아서, 대신 이제야 시즌 2를 보는 게 말이 되냐고 얼른 시즌 끝까지 보라고 놀렸다^~^. 야야 얼른얼른 보고 유포리아 봐야지 모하는 거야~!
미국에 있으면서 조금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사실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것. 소비하는 콘텐츠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다. 어쩌면 콘텐츠의 영향으로 행동의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일 수도?
좋아하면 설레 하고,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다 못 견뎌서 말해버리고, 재미있으면 웃고, 하릴없이 농담하는. 그 모든 것이 똑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외국인 친구들한테도 겁을 덜 내고 아무 말을 시전 하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특히 친한 친구들이랑 있으면 더더욱. 클럽을 가고 싶지 않냐는 켄의 말에 '야야 다들 너 같진 않다~'라고 받아치고, 술 먹을 때만 담배를 피운다는 안디의 말에 '근데 너 술 맨날 먹잖아~!'라면서 놀리는 짓궂은 장난들은 그들을 좋아하고 친밀함을 느낀다는 부족한 나의 표현이다. 같은 생각을 한다는 배움 덕분에, 그들에게도 부족하게나마 나의 애정을 편하게 표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한편으론, 어쩌면 그런 시간이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또 압도되는 기분이다.
다음 날엔 아점으로 타코를 사러 나섰다. 작은 가판대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넣어 만들어주는 타코 집은 어쩐지 8살의 내가 있던 필리핀이 떠올랐고, 수많은 백인들이 그런 문화를 이국적이라고 말하면서 소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내기 때 지우랑 갔던 태국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은 꼭 본인들이 가지지 않은 것을 좋아한다고 또 생각했다. 태국과 멕시코 사람들은 수많은 유럽 나라들과 미국 사회를 원하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탈출해 그들의 문화권을 동경하는 사회의 것을 소비한다니.
나도 그렇다. 웬만한 친구들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지만, 나는 늘 다른 사회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저번에 나의 최애 미국인 Zach과 밥을 먹을 때 'Everyone eagers to have what they don't have'라고 말한 것이 기억이 났다.
Everyone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아니, 사실 탈피해야 하는 지도 의문이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하지만 그 속에 있는 '평가'는 적어도 멈춰야 한다는 것만은 명확했다. 또 잊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과 동시에, 아는 것을 자주 까먹는다.
'다들 왜 안 나와'하며 무료해하던 나. 스미레가 찍어줬다. 요즘 내 사진을 찍는 게 싫다. 원래는 조금 즐겼던 것 같은데 말이야. 사진을 찍으면 나의 생김새를 새삼 인지하는 것(^_ㅜ)도 싫지만, 무엇보다도 싫은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가하는 '예뻐야 한다'는 압박이다. 그런 압박이 있으면 사진을 예쁘게 찍고 그런 모습이 되게 꾸미는 데에 나의 에너지를 너무 쏟게 되는 것 같다. 에너지를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보는 데 투자할 수 있는데, 그깟 꾸밈에 쓰는 것이 조금 아깝게 느껴진달까.
사진에 집착을 덜고 나니, 즐길 수 있는 영역에서 꾸미는 것 같다. 화장도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머리를 안 하고 싶으면 질끈 묶어 버린다.
세상엔 그깟 머리보다 중요한 게 많으니까-!
그래서 이번 여행에선 하고 싶은 대로 꾸미고, 사진도 가증스럽지 않게 찍었다. 바보 같이 웃고 있는데, 또 그게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전에는 나의 모습 자체에 조금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내가 외로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어쩌면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나라는 사람으로서 수많은 문화권과 소통하는 경험이 준 소중한 영향이다. '예쁘지 않아도 되고, 좀 바보 같아도 된다'는 것이 24살의 나에게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주문이다. 이 주문을 하기까지 사실 5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우리가 간 와이너리에서는 생산한 와인을 시음하고, 그 와인과 함께 주문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생산한 포도와 섞어서 만든 와인보다, 그곳에서 생산한 포도로만 만든 와인이 더 맛있었다. 조금 더 드라이하고, 과실의 향이 더 느껴지는 맛이었다.
처음에 나는 와인을 전혀 몰라서 확신 없이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picky Italian이 맛있다고 해 주니까 당당하게 나의 취향을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취향에 확신이 없는 것은 사실 늘 있는 일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도 될지 늘 걱정해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착하게 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가 착한 기업인지 검토하고 좋아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말하기 전에 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가 건강한 채식 음식을 먹는다고 확신하기 전에, 내가 먹는 아보카도가 과도한 탄소를 배출해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사로운 것을 확인해야 진짜 착할 수 있는 사회다. 그래서, 평소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사려 깊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 고등학교 때부터 있던 버릇인데, 이제 너무 굳어져서 그냥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냥 와인 하나에도 쉽게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
밥을 먹고 -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 - 디저트를 먹으러 베이커리로 향했다. 동네 빵집처럼 작고 소박한 느낌의 장소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중에서 주인아주머니의 3살짜리 아기에게서 과분한 따뜻함을 느꼈다.
보통 아이들이 나를 잘 따르는 편이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안아달라고 할 때 몇 번 안아주면, 아이들이 금세 나를 따르곤 한다. 이 아기도 처음에 인사하고 안아주니까, 고새 정이 들었는지 밖에서 커피를 먹던 나에게 달려와서 폭 안겼다. 선택받은 것 같아서 감격스럽고, 그 짧은 시간에 마음을 주는 순수함에 감동받았다.
우리는 늘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아끼는데, 먼 곳에서 오고 말도 안 통하는 나에게 이렇게 쉽게 포옹을 내어주다니. 순수한 사랑을 다시 기억하게 한 3살짜리 선생님이다.
나도 사랑하는 것들에 겁먹지 말아야지, 원래 인간이 이런 거니까, 마음을 멈추지 말아야지. 오래오래, 진짜 진짜 좋아해야지. 그래서 그날은 마음을 아끼지 않고 아기 선생님을 안아주고, 강아지를 쓰다듬어주고,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니,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친구들을 안아주기도 했다. 선생님, 고마워!
(물론 숨바꼭질을 하자고 조르던 것과,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라고 명령하던,, 고집불통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귀여워서 다 해줬다^^!)
이렇게 내 멕시코 여행이 끝이 났다.
다음에는 내 룸메가 사는 멕시코 시티도 가보고 싶다. 거기는 더 색채가 많은 곳일 것 같다는 기대. 그리고 방학 때 새로운 로드트립을 가보고 싶다는 기대.
매일 이렇게 기대의 연속에서 사는 삶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는 사실이 매일을 더 아쉽게 만든다. 이제야 우리는 친구가 된 것 같은데, 또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참 속상하다. 이제야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항상 아쉬움은 소중함을 알려준다. 내가 소중함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런 맥락에서 그리울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감하는 이번 여행은 더 특별했다. 하나하나, 모든 말을 기록하고 싶게 만들었다. 눈 앞에 두고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더 많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던 여행이었던지라, 내 인생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안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울 거야,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