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현 Aug 09.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21. 로드트립

23살, 난생 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TUd96D5HFaYhttps://youtu.be/NxP-CmcMgaY

오늘의 영상 1
오늘의 영상 2




종강을 하기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일주일 있는 봄 방학에 멕시코를 같이 갔던 친구들 몇몇과 함께 캘리포니아 로드트립을 해보자고 얘기가 나왔었다. 차에 과자를 가득 담고, 차 창문을 4개 전부 열어버리고, 쌩쌩 달리면서 바다를 보자고 했다. 크게 음악을 틀고 소리를 지르면서 즐거워 할 우리가 눈에 선했다. 그래서 당연히, 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때 나는 샌디에이고와의 이별을 목전에 두고 있던 상황이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마지막 시간을 로드트립으로 써버리고 싶은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2일 뒤에 떠나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가서 그들과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차역에서 그들을 만나 맥북 기본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Big Sur를 향해 갔다. 절벽에 있는 도로를 한참을 달려야 했다.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길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창밖을 보며 친구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었다.



가는 길에 배가 고프면 차를 잠깐 멈춰 세우면 되었다. 트렁크에 전에 먹다 남은 피자를 올려두고 먹었다. 바로 옆에,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먹었다. 고개를 조금 빼고 내려다보면, 가파른 절벽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옥빛의 파도만 보인다. 바다 위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의 작은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발레리오, 안드레아, 제나이와 '블루메리또'를 가지고 한참을 웃던 기억도 난다. 블루메리또는 멕시코 말로 갈대를 뜻한다. 제나이는 갈대가 주변에 많은 것에 신기해서 대화를 시작했지만 영어로 그걸 설명할 수 없어서 온갖 의성어와 의태어, 바디랭귀지를 활용했다. 그러고선 차를 세웠을 때, 바로 갈대를 하나 뽑아와 우리에게 다시 설명을 위해 했던 모든 제스쳐를 다시 했다. 우리는 그런 제나이를 따라하며 깔깔 웃었고, 갈대로 차를 닦는 것처럼 장난도 치고, 마지막에는 깃발처럼 차의 창문에 꽂아두었다. 낡은 차에 탄 우리 넷은 그저 갈대 하나로도 재미있을 수 있었다.


길 중간중간에 예쁜 곳이 보이면 종종 멈춰섰다. 그 곳에서 제나이는 필름 카메라를, 안드레아는 DSLR을, 나는 동영상을 찍었다. 우리는 풍경을 찍다가 서로를 찍기도 하고, 멍하니 서서 바다를 보기도 했다. 각자 다른 카메라를 지녔지만 결국 모두 이 순간을 다양한 수단을 통해 기억하고자 한다는 목적이 같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이 얼마나 소중하고 신기한 경험인 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각기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같은 특징을 지녔다는 사실이 마음을 묘하게 안심되게 했다.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여기서 새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만 떠난 여행이라, 처음엔 좀 무서웠다. 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그들도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들을 사랑했다. 그들도 이 여행을 기억하고 싶어했고, 나도 그랬다. 우리는 그렇게 그냥 같은 것이었다. 더 이상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과분했다.




그들이 조금 더 사진을 찍을 동안, 주변을 살폈다. 앞으로 갈 수록 바다가 조금씩 맑아지는 것 같았다. 옥빛 같던 바다가 이제 조금 투명하고 조금 더 새파랬다. 바람에 수 많은 물결이 일고, 그 각각이 햇빛에 반짝였다. 너무 많은 잔 물결이 있던지라, 바다 전체가 은빛 비늘이 잔뜩 있는 하나의 물고기처럼 보였다. 전체가 한덩이로 움직이니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지구를 감싸는 하나의 터키석 색의 물고기, 거대한 덩어리지만 하나하나의 비늘이 다르게 빛을 내는 물고기.

그리고 우리도 이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저 비늘 같은 파도 같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같으면서 다른, 가까이 오는 줄 모르게 가까워지고 마는 그런 특성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쉽게 부서져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big sur을 보고서, 보라색 해변을 보러 다른 곳으로 갔다. 이름은 Pfeiffer Beach! 진짜 진한 보라색을 기대하고 간다면 '뭐야'하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난 전혀 기대를 안했던지라 엄청 신기했다. 일반적인 모래 위에 보랏빛의 모래가 조금씩 있었다. 사진의 돌에 조금씩 보랏빛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바람에 모래가 흔들리며 보랏빛이 흩어질 때는,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신비로웠다.

하지만 그런 보라색 모래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었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모래 폭풍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모래가 눈에 들어와서 고글이나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뜨고 걸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 와중에도 서로의 몰골에 웃음을 참지 못하며 선글라스를 쓰고 뒤로 걸어갔다. 여기를 다녀 온 이후로는 온 몸에서 문득문득 모래가 나왔다(^^).

찝찝했지만, 바람이 부는 곳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면서 놀았던 기억은 참 좋았다. 진짜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에는 처음 묵은 숙소에서 멀지 않던 베이커리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동네가 참 잔잔하고 아기자기했다. 산타바바라 여행을 갔을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전형적인 오렌지 빛 지붕이 있는 스페인 풍 집들과, 작고 귀여운 기념품 가게, 인위적인 장식보다 자연적인 요소들로 채운 카페들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곳들이었다.

아침으로 빵을 먹으면서 여행이 끝난 후를 얘기했다.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날 들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실감났다. 누군가는 독일로, 누군가는 멕시코로, 누군가는 한국으로.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전 세계에 흩어질 우리들의 존재가 서로에게 선물 같다고 얘기했다. 어디에 가도 하나씩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선물 같다고. 사랑스러운 말에 마음이 마시멜로우처럼 말랑해져서는, 조금 울컥했다. 그래서 우리는 2일 정도 있을 샌디에이고에서의 남은 시간을 계획했다. 같이 요리를 해서 먹고,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자고. 언젠가 제나이가 알려줬던 것처럼, 우리의 파도 차례를 잠잠히 기다렸다가, 같이 보드 위에 우뚝 서자고!

장을 보러 Trader Joe에 갔다가 제나이와 이런 귀여운 미션을 수행했다. 모든 트레이더 조는 이런 이벤트를 하고 있다는데, 난 처음 알았다! 종 밑에 달려있던 수달 인형을 찾아서 사진을 찍고, 제나이와 사탕을 받았다. 그걸 하나 찾고 신이 났다. 노란 롤리팝을 받은 우리는 신나게 그걸 먹으며 차를 탔다. 물이 없어서 버드와이저를 마셔대면서, 또 그 갈증을 느끼게 하는 사탕을 빨았다. 평소라면 그 갈증이 무서워서 가방 속에 고이 두었을 사탕을 아무 생각 없이 먹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뿌듯하기도 했고, 이런 내가 다시 정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옆의 이탈리아인들에게 휘파람을 배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가는 길에 들렀던 스탠포드. 가쉽걸에서 네이트가, 하이스쿨뮤지컬에서 가브리엘이 다녔던 학교에 방문하다니! 마음이 조금 벅차고 두근댔다. 어딘가에 가브리엘이 트로이와 함께 있을 것 같았다. 레베카와 제나이, 그리고 나는 하이스쿨뮤지컬을 엄청 열심히 봤었다. 어린 우리들이 왔으면 엄청 좋아했을 거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어린 레베카와 제나이, 나에게 늦게서야 주는 선물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가브리엘이 트로이와 춤 춘 곳을 찾으려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물론 찾지 못했지만 비슷한 곳에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독일인 커플은 하이스쿨뮤지컬처럼 춤도 추고, 나뭇잎으로 만든 반지도 선물했다. 하이스쿨뮤지컬을 보던 어린 시절은 지난 지 오래였지만, 우리는 그 영화에 한 장면일 뿐인 곳에서 정말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했다. 유치하고 감상적이게. 스탠포드가 하이스쿨뮤지컬의 'happily ever after' 가 있던 곳이라서 더 그랬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춤을 추고선, 우리의 happily ever after는 어디서 일어날지 궁금해 했으니까 말이다.

학교를 구경하다가는 게시판을 봤다. 어쩐지 우리나라보다 아날로그적인 그들만의 감성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서 굳이 멈춰서서 포스터들을 읽어보았다.

최근에 붙여진 여러 홍보물들이 눈에 띄었다. 여느 대학처럼 분노하고, 휴식하고, 유흥하는 것들이 모두 게시되어 있었다.

나는 무엇을 궁금해했던 걸까. 그들도 그냥 인간이라는 사실을 또 잊었다. 내 하찮은 생각에 웃음이 조금 나올 뻔했다.

동시에 그들과 내가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는 이 경험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안 그랬다면 난 또, 편견이 가득한 채로,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며 내가 자의적으로 지은 경계 안에서만 소통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마터면 나 자신에게 갇혀 살 뻔 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안드레아가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철이 안든 아빠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 몰래 장난을 치다가 엄마한테 조금 잔소리를 들을 것 같은 그런 느낌? 가끔 중앙 차선을 조금 넘어서 타이어에 울퉁불퉁한 바닥이 닿으면, 차체 전체가 부르르 떨리는데 우리는 그게 또 신이 난다고 소리를 치면서 웃어댔으니까 말이다.

사진은 사색하는 발레리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 발레리오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본 친구다. 안드레아와 같이 여행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멋쟁이다. 영어는 잘 못하지만, 언어가 없어도 진심을 전할 수 있음을 알려준 친구다. 여행 내내, 누구보다 따뜻했고, 재미있었다. 넘어졌을 때 걱정해 주는 눈빛, 부축해주는 손길, 어디선가 약을 구해오는 행동으로 그 애정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음을 배웠다. 언어의 장벽을 넘은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마음을 조금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발레리오는 우리 차의 디제이었다. 스포티파이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와서 우리 4명이 차에서 늘 파티를 하는 기분을 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아직도 내 파티 플레이리스트에는 이 여행에서 발레리오가 알려준 음악들이 꽤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때 듣던 노래만 나오면 수 십 km를 운전하면서도 늘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던 우리가 생각나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 운전하고 나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저번의 샌프란은 비가 와서 우중충한 느낌이었다. 움 드라마에서 본 관념 속의 영국 같은 느낌? 근데 이 날은 날이 맑아서 공원에서 저 끝까지의 야경이 다 보였다. 불빛들이 하나 같이 아늑한 노란 빛이라, 속이 뻥 뚤리는 야경이라기보다는 기분이 말랑하게 되는 야경이었다.



산책을 하다가 만난 미세스 다웃파이어에 나왔던 집. 미디어에 뇌가 절여진 나와 제나이는 이걸 보고 또 얼마나 신기해 했는지 몰랐다. 집 안에 실제로 어떤 할머니가 침대에서 책을 보고 계셨는데, 그래서 뭔가 영화가 더 실제 같이 느껴졌다. 역시 샌프란시스코는 다시 와도 너무 낭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다들 돈을 벌면 여기에 집을 사겠다고 말했다. 금문교가 보이는 빅토리아풍의 연노랑 집에서, 창문으로 밖을 보며 차를 마시는 삶을 기대했다. 우리 모두에게 그에 버금가는 순간들이 인생에 덕지덕지 생기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LA에 있을게 얘들아)














다음 날 아침을 대충 해결한 나. 각자 아침을 먹는데, 나는 주변 카페에서 크라상을 사서 커피와 먹었다. 바삭하고 조금 기름진 크라상이 너무 맛있었다. 커피와 호록- 하고 있자니 따뜻한 기분이 감도는게 좋았다. 가게는 호텔 안에 딸려 있는 작은 카페인데, 사람들이 꽤나 많이 와서 나처럼 크라상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미국이 받은 유럽 문화의 영향을 또 떠올리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의 지역의 것들이 정교하고도 어이없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인 미국을 말이다. 미국에 꽤나 오랜 시간 지내게 되면서, 그래서 유럽 국가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되었다.





9시 쯤 운전해서 도착한 금문교 뷰포인트.

제나이와 나는 사진을 찍고, 돌 위로 탐험을 떠난 두 이탈리아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에서 내 뒤에 보이는 검정색 돌 위로 올라갔다는 말이다. 거리가 좀 있어서 저렇게 낮아보이지만, 생각보다 높고 가파르며 미끄러워서 제나이와 나는 포기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다녀오겠다고 했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 누드 남자들이 속속들이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이 누드비치였던 것이다. 몇 명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한 명은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 두려움이 가중되고 있었다. 제나이와 나는 차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이탈리아 친구들이 거의 다 왔다고 전화가 왔고, 금방 우리에게 왔다. 넷이 되어서야 안심하고 다시 차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게 내 두번째 누드비치인 셈인데, 학교 주변의 누드비치를 갔던 처음과 달리 이번엔 조금 두려웠던 기억이 강했다.





두 누드비치는 모두 남성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나체로 있는 비율도 매우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난 늘 사람을 성별로 구별하는 경우를 경계하고 싫어하는데, 이 사례는 성별 자체인지, 성별에 사회가 부여하는 역할에 의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성별로 나눠지는 사례를 관찰한 것 같아서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차로 함께 돌아가는 길에는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금문교가 지어지는 과정에서 있던 수 많은 희생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안드레아는 원래 자기 사진을 잘 찍거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발레리오 때문인가 여기저기서 잘 찍었다. 역시 누구와 같이 있느냐가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간 롬바드 스트리트!

이번에 샌프란에 다시 가면, 언덕 위에서 파란 바다로 끝이 나고야 마는 언덕길을 보고 싶었다. 저번에 갔을 때는 너무나 흐린 날씨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운타운 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 언덕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롬바드 스트리트에서 전에 가진 그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 보다, 더 많은 꽃이 피고 햇빛이 쨍하던 롬바드 스트리트는 훨씬 예뻤다. 언덕의 끝에 시선이 다다르면 푸르게 빛나는 바다도, 열과 행을 맞추어 있는 집들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 언덕을 내려가면서 수 많은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피어 39






피셔맨스 워프에서 사워도우+클램차우더 조합을 먹고 피어39로 걸어 갔다.


여기는 날씨보다, 과거보다 훨씬 많아진 인파에 놀랐다. 원래 이렇게 번잡한 곳이었구나-.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 피어는 어디보다도 상업적이고, 쨍하게 화려한 곳이었다. 나는 여기서 짐을 챙겨 한국에 가기 위해 더플백을 하나 샀는데, 내가 한 소비가 아마 여기서 가장 이성적인 행위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쇼핑을 하고 나니 힘이 들어 자리를 잡고 조금 앉아서 제나이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꽤나 오래 나눴다.



제나이와 나는 둘 다 어떤 역사가 깃들었거나 자연에 가까운 곳으로 가는, 조금은 모험 같은 여행을 좋아한다. 국립공원이나, 전 날 간 보라색 모래가 보이면서 바람이 엄청 부는 바닷가 같은. 상업적인 곳에 있자니 어쩐지 기운이 없어지고, 금방 힘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다. 아마, 수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사랑하고, 소비하고, 오염시키는데 그런 행동의 양상은 문화권을 불문하고 늘 유사하게 나타난다. 피어 39이든, 부산의 광안리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와 기념품을 사고 술을 마시면서 그 본래의 환경을 파괴하고 만다. 그리고 서로가 만든 그 오염된 모습을 결국 본래 모습이 그런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그런 행태는 제나이와 나에게는 한 10분이면 족한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저 다리 쪽에 있는, 과거에 감옥이었던 섬을 가보자고 얘기했다.






그리고선 시내를 돌아다녔다.

쭉 걸어가다보니 이탈리아 마을이 나왔고, 거기에 앉아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성격이 급하고, 조금 까칠한 것 같지만 알고보면 여린 면이 있는 느낌이라 그렇다. 커피를 내주던 아저씨도 그런 느낌이었다. 툭- 조금 거칠게 커피를 눈 앞에 내려두지만, 내가 자리를 뜰 때 쯤엔 눈인사를 하며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


그리고 이때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막 하교하고 있었다. 여기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다니!

하지만 막상, 그들에게는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도 그 예쁜 서울 동네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으니까. 인간은 어떤 곳에 있어도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늘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욕망하며 시간을 투자한다는 사실에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의 미약함을 또 다시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보다, 그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캘리포니아가 누군가에게는 각박한 현실의 현장이지만, 나에게는 환상과 환희로 가득찬 아름다운 도피처인 것처럼!







해가 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은 꽤나 차가운 느낌이었다.


내가 해질녘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상이 다 따뜻한 색감으로 변하기 때문이었는데, 여기는 조금 푸른 빛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조금 차가운 도시의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영국이 떠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도시의 빛깔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길에서 와인을 한 병씩 마시며 앉아있던 커플은, 그 어디에서 본 선셋보다 오렌지 빛깔이었다.


타지인인 나에게 친절히 안녕이라고 말하면서 서로에게 따뜻한 눈빛을 주던 둘은 오렌지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뜨겁게 붉은 색이었다.










저녁은 차이나타운에서 먹었다. House of Nanking이라는 장소였는데, 유명해서 먹는 내내 웨이팅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나눠서 애피타이저인 번, 만두, 컬리플라워 볶음 요리, 닭고기 튀김 요리, 볶음밥을 먹었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 모든 메뉴가 맛있어서 제나이와 하이파이브를 한 10번 했다.


사진은 우리 자리 바로 뒤에 있던 건물이다. 너무나 유럽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내 앞에 있는 유러피안들이 떠드는 소리가 한 데 섞여서 잠시 유럽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시끄러운 길가, 공기는 차갑지만 난로 덕에 너무 춥진 않은 테라스, 좋아하는 친구들, 그리고 작은 장난들은 행복감을 주기 충분했다.

   











다음 날, 세시간 가량을 달려 드디어 요세미티 국립공원 도착!

가는 길도 요정들이 나올 것 같아서 너무 예뻤고, 뷰포인트도 아름다웠다.


뷰포인트인 El Capitan  절벽에서 하트 모양 같은 크랙을 발견하고는 나중에 프러포즈는 여기서 하는게 좋겠다고 우리끼리 결정 했다. 땀 범벅이 되어서 산을 오른 후에, 아직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을 때 프러포즈를 하면 상대는 그 심장이 나 때문에 뛰는 걸로 착각할 거라고 말하니까 이탈리안이 연습을 해보자고 했다. 나뭇잎 반지로 예행 연습을 하고는 실전에서는 더 잘할거라고 했다. 친구들은 안믿는 눈치였고, 하트 모양이 보이게 셀카나 찍자고 했다. (^^)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나와서 짧은 하이킹을 했다.


두 이탈리아인은 운동선수 출신이라, 엄청나게 빠른 하이킹이 가능했지만,,,, 난 체력이 바닥이라 헥헥- 숨소리를 내면서 쫓아갈 수 밖에 없었다.


올라가서 본 핑크 하늘은 신비로운 느낌이었고, 올라온 힘듦을 보상해주는 것 같았다. 한시간 정도, 바람을 느끼고 하늘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늘 바다에서만 보던 선셋이 아니라 산 사이에서 보는 것이 새로웠다.


내려오면서는 또 숨길 수 없던 장난들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게 했다. 발레리오가 숨어서 나를 놀래켰을 때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높이 뛰었던 것 같다.






내려와서는 선명하게 보이는 별에 놀라 잠시 바닥에 누웠다.


알래스카만큼 선명했지만, 알래스카보다 별이 가깝게 느껴졌다. 별이 더 크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실제 고도가 높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누군가 말해주었지만 문과인 나는 그 논리를 머릿속에서 검증할 수 없어서 그냥 믿었다. 틀려도 상관 없었다. 마음으로 가까운 느낌이 들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별을 한참 보다가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와서는 저녁을 준비했다.

메인은 이탈리아인들이 만들어주는 파스타여서 나는 옆에서 보조만 했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가끔 토마토를 손질했다. 그리고 더 할 일이 없나 살피고 있었는데 금방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안드레아가 해 준 파스타를 먹은 경험은 이번이 두번째였는데, 둘 다 너무 맛있었다. 네이티브는,,,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리고 각자 맥주든 와인이든 마시는 시간이었다. 얘기를 한참 하다가 안디가 알려준 술게임을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종이에 병뚜껑을 던져서 올리고, 그 영역에 그려진 미션을 수행하는 거였다. 아무 것도 없는 영역이었으면 내가 그 위치에 미션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나는 운이 좋아서 '10초간 춤추기' 벌칙을 내가 만들었는데, 그 벌칙에 내가 걸려서 춤을 췄다. 멕시코에 이어 술만 마시면 춤을 추는 파티걸이 된 기분이었다.

사진은 벌칙으로 내 크롭티를 입었던 피에트로다.

이 날 피에트로와 마이클이 우리 숙소에 하루 조인해서 같이 있었다. 이 둘은 UC Berkely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던 이탈리안들이다. 안드레아, 발레리오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이었다. 그래서 우리랑 처음 본 사이었는데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 함께 놀았던 사이인데도, 혹시 하이킹이 늦어져 인사하지 못할 것을 대비하여 이른 아침에 밝게 인사해주었던 친구였다. 요세미티를 떠나는 순간에도 얼굴을 보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하트가 가득 담긴 문자를 보내줬다. 하루 만난 사람이 이토록 귀엽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난 사랑이 많은 사람들은 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런 생각이 확증편향이 되고 마는 경험이었다.


자기 전에 다 같이 나가서 별을 봤다. 바닥에 누워 한참을 있었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누워서 또 별똥별을 기다렸다. 우리가 조금 시끄러웠지만, 심장이 두근거리는 바람에 옆 집에 대한 미안함은 생각도 안 날 지경이었다. 별똥별이 하나 더 떨어지고 나서 늦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또 소원을 빌었다.

너무 추워서 몸을 툭툭 털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계단을 올라오는데 앞이 하나도 안보여서 피에트로와 의지하며 올라왔다. 적막이 있어 괜히 몇마디를 나눴는데, 기억도 안나는 짧은 대화다. 하지만 추워서인지 몸에 작은 소름이 돌았고, 그가 butterflies in stomach를 말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그 간지러운 찰나의 감정은 바람이 부는 목덜미의 감촉을 기억하듯, 문득 떠올릴 수 있는 기념품이다.


김애란의 소설 구절 같던 날이었다. 날이 맑아 하늘에는 총총 별이 있고, 여름 미풍에 가슴이 널을 뛰는게, 아무나 막 사랑해버리고 싶던 밤이었다.


별이 가득한 날들은 늘 조금의 두근거림을 안겨준다. 내가 세상의 작은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줌과 동시에, 저 별 하나하나에 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니까 그렇다. 반짝, 하는 찰나가 현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확실함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미물과, 이야기와 무용함은 늘 저 별에 다 담겨있어서 그렇다.

숙소에 와서도 창문으로 별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인터넷도 없이 오롯이 별과 우리만 있는 숙소는 내 기억 속 언제랑 견주어도 최고로 로맨틱했다.














다음 날 하이킹을 가면서 불에 다 타버린 요세미티를 볼 수 있었다.

작년 여름 요세미티에 큰 불이 났을 때, 자연에 맡겨야 한다고 불을 끄지 않은 것이 엄청난 면적의 나무가 탄 이유랬다. 잠시 자연의 힘을 믿는 것이 맞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 불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이 개입해야 할 일일까? 안드레아는 이 말을 듣고 인간이 만든 불을 책임지지 않고 자연에 떠넘기는 거라며 분개했지만, 난 어쩐지 엄청난 면적이 황폐해 졌더라도, 자연을 믿어주는 것 같아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믿음과 지원 아래에서는 자연도 회복하고야 말 것 같은 생각과 공감도 들었다. 무엇 보다도 불이 모든 것을 먹어치울 것 같던 두려운 상황에서도, 자연에 대한 믿음과 자율성을 선택할 수 있던 미국인들의 단호하고 자신있는 결정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죽음과 그를 에둘러 흐르는 생명. 그 둘의 공존을 보고 있는 미물. 뿌리가 다 뽑혀 누워있는 나무를 보자니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무엇이 잔인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무엇이 잔인한 것인가. 뿌리가 다 뽑혀 죽더라도, 자연스럽게 죽는 것은, 인간에 의해 깨끗한 판자가 되는 것 보다 덜 잔인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뿌리가 뽑히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운명일 지도 모른다. 결국은 흐르는 차가운 생명 속에 놓여야하는, 검게 썩은 나무. 하지만 적어도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제 운명에 의해 쓰러지는 그런 나무.

하지만 수많은 상황은 인간과 자연 모두를 그렇게 두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판자가 되고, 어딘가에 마루가 되고, 그렇게 썩어가고 만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맨질하게. 이 나무의 죽음보다 그런 생이 더 잔인한 살인의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올라간 하이킹!

올라가는 길에 마주한 흐르는 강과 침엽수 나무들과 거대한 바위산이 함께 보이는 뷰가 정말 엄청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이킹을 하는 과정 전체가 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한 발 씩 더 나갈 수 있다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 과정은 신체와 정신을 모두 단련시키는 것 같았다. 등산이라는 것이 단순히 뷰와 바람을 맞는 것은 아니겠구나, 정신을 단련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실 폭포 뷰 자체는 밑에서 보는게 더 예뻤다(^^). 함께 산을 올랐던 친구들과 '하이킹을 한 이유가 있었을까?' 하고 말할 정도였다. 아래에서 물의 추락을 보고 있노라니 그 웅장함이 더 잘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밑에 가면 차가워서 눈처럼 느껴지는 물방울들이 달려드는 것 같다. 5분 정도 서 있었는데 머리가 꽤나 젖을 정도였다. 엄청난 바람에 또 깔깔 웃으면서 괜히 더 버티고 서 있었다.






선셋을 보기 전에는 이렇게 타는 듯한 햇빛에 마주선 협곡을 볼 수 있다.

원래 선셋으로 하늘의 색이 오렌지 빛으로 변하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온 세상이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세상의 구석구석이, 따뜻한 그 색으로 변하면서 아름답게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 좋다. 세상이 고해성사를 하면서 울음을 토해내는, 그렇게 눈물로 세척되는 듯한 착각이 들면 마음에 있던 분노가 누그러지고 사랑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했다. 그런 착각을, 날 늘 믿고 싶어했었고 미국에 있으면서는 꽤나 자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빛은 따뜻함이 아니라 뭔가 타는 듯한 뜨거움이었는데, 자연이 너무 거대하고 아름다워서 더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엄청난 협곡 앞에서는 그런 눈물과 자책 역시 너무 작은 것이라는, 늘 마음에 이고 살아가는 슬픔과 사랑마저 티끌과 같은 것임을 느꼈다. 그래서 잠시 그것들을 놓아두고 내가 먼지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일을 다루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감정들에 쉽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가끔은 꺾이기도 하는 내가, 생각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그것을 그저 인정하고 나니, 꺾이는 것이든 흔들리는 것이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난 아주 작을 뿐이다. 내가 잠시 꺾이는 것은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다. 잠시 흔들리고 안정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거대한 본질을 변하게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저 작은 나무들처럼 그저 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썩어가든, 타고 남은 재가 되든, 내가 이 자연 속에 나의 본질을 지니고 그저 서 있는 것. 그것으로 다른 것들은 괜찮다. 원경에서 보면 조금의 흔들림은 그저 풍광을 아름답게하는 조금의 변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다 괜찮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것들을 마주하는 것은 조금의 경외심과 공포심을 주는 동시에 어쩐지 마음이 매우 편안하게 한다.





방에 돌아가니 모닥불을 붙여놓고, 테이블을 귀엽게 세팅해 둔 이탈리아인들…


이 날은 멕시칸이 부리또를 만들어주었는데, 진짜 맛있어서 ‘한국에 가서도 만들어 먹어야지’ 생각했다. 제나이가 치즈를 넣으면서 장난으로 너 부리또엔 치즈를 더 많이 넣었다고 말해준 것도 너무 귀여워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치즈 나 주는거,,,,? 그거 사랑 아니냐구,,,


와인을 먹다가 내 티슈 네임택(아래 사진 참고)에 그려진 해를 색칠하고 싶어서 와인을 조금 떨어트렸는데, 망쳐버렸다. 해 바깥으로 와인이 모두 번져버렸다. 내가 그러고 있을 때 안드레아랑 발레리오가 빤히- 쳐다봤다. 본인들이 만들어 준 귀여운 네임텍을 망쳐서 서운한 줄 알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나보고 7살이냐고 했다. 아직도 그게 칭찬인지 욕인지는 미스테리다.

돌아오는 길은 예상하지 못했던 드라마가 생겼다. 조금 불안했던 안디와 안드레아의 관계가 터져버렸다. 돌아가는 길에 하이킹을 가느냐 마느냐로 싸우게 된 것이었다. 사실 그 전에도 작은 것들이 부딪히는게 보였는데 이 사건으로 그 감정들이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그 둘은 여기서 지내던 6개월 내내, 누구보다 친했던 사이였다. 늘 같이 놀고, 여행하고, 밥을 먹는, 또하나의 가족같은 사이. 그런 사이가 안디가 돌아가기 직전에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내가 다 아쉬웠다.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에야 그 둘은 화해를 했지만, 전과 같지 않을 것을 알기에 속상했다. 추억은 사실 사람에 담겨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소중한 사람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의 상실감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비숫한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둘의 사이를 보고 '맞지 않는 사람은 진짜 존재하는걸까? 아님 더이상 맞춰주고 싶지 않은 것 뿐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을 내내 같이 다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안타까움에 쓸모 없는 가정만 하다보니 생긴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아낀다는 것'은, 나의 작은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하여 내어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와 같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만약 나와 즐길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거의 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나는 어땠는지 또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 직전, 사람은 가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은 이미 나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어차피 상대는 내 인생에 함께하는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도 내렸다. 안디와 안드레아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서로를 공유했기에. 어쩌면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아직 서로의 인생에 있는 한, 그들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우리의 6개월은 우리의 끝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지금 나와 이별을 마주한 소중한 시간들을 함께한 사람들도, 장기적으로 보면 끝이 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이별을 이별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눈물도 이제 안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 들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로드트립에 대한 일기다. 갈까 말까 수 없이 고민했지만, 막상 가고 나니 좋았던 여행.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을 요구한 게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낳았던 시간이다. 사람에 대해 많이 배우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감정들을 격하게 느낀 날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우리들' 안에 있으면서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과 따뜻함을 느낀 여행이었다.

이전 08화 태어나서 처음으로 - 17.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