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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Aug 06.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20. 해가 져도 가지 않는 사람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아무 일정이 없어서 퍼시픽 비치로 갔다. 최애 타코 플레이스인 오스카 타코에서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서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킬링 타임으로 타코와 바다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시간이 나면 파란 바다를 보고, 생각을 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니. 꿈 속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런 곳일까, 싶다. 있으면 있을 수록 더 있고 싶은 샌디에이고는 떠날 때가 될 수록 사랑스럽다. 오늘은 또 날씨도 완벽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 보다 파란 바다, 햇빛에 조금 더 노란 빛이 도는 절벽과 봄이 옴을 알리는 듯 피어난 작은 꽃들. 멀리서 들리는 깔깔- 웃는 소리도 기분 좋은 백색 소음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LA, 최근의 코로나도 섬도 날씨가 안좋았어서 이 샌디에고의 날씨를 당연히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일상이었던 파란 하늘이 같은 캘리에서도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고, 그래서 더 소중히 느끼는 중이다.


해가 지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앞에 있던 벤치에 앉아 멍하니 봤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도 아름다웠지만 바다의 색감이 오묘하게 아름다웠다. 투명하고 깨끗한 하늘색 물결의 연속이 영원한 것 같은 바다는 정말 처음이었다. 그 깊이가 알 수 없을 정도로 새파란 색은, 하루 종일도 바라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깊은 파란색을 지닌 파도도 부서지며 물이 얇아질 땐 노을의 노란 빛이 조금 비쳐 색감이 바뀌었다. 하늘색 속에 작은 주황빛 반짝임! 사진을 찍다가 그 동안 기억할 수 없다는게 아까워서 얼른 눈에 담았다.


해는 오늘도 뒤에서 누가 당기기라도 하는 듯 빨리 사라졌다. 나는 해가 지고 난 후에도 바다를 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해가 사라지자마자 - 기다렸다는 듯 - 바다를 떠나는게 조금 슬프게 느껴져서 더욱 발걸음을 뗄 수 없었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해가 지자마자 떠나는가, 해는 바다의 본질이 아닌데. 바다는 아무것도 잃거나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더이상 바다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는 듯, 맥주나 들이키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꽃보다, 낙엽이 떨어지고 난 겨울 나무가 좋았다. 꽃이 예뻐서 나무를 좋아하다가 잎까지 떨어진 나무를 잊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유난한 걱정이었다.


해가 지고 나서의 바다를 떠다는 것은 어쩐지 같은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해가 없어도 그것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공간인데, 수많은 물결은 수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데. 나는 해가 진다고 떠나는 사람이 되진 말아야지. 해가 지고 난 후에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 모든 사람들한테도 그럴 수 있어야지.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바다를 조금 더 보다가, 추워서 정신을 차렸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허억-하면서 멈출 수 밖에 없었는데, 달이 유난히 크고 낮아서 만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는 명확하게 잘 안보이지만, 정말 달토끼가 눈으로 보였다. 너무 크고 또렷한 달이라서 컴퓨터로 그린 것 같았다. 어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달이었다. 우리만 이 달을 보고 정신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일상처럼 지나갔다.

이런 달이 이 사람들한텐 일상이라고? 하는 물음도 생겼다. 선셋을 볼 때는 모두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나면 전부 각자의 것을 하는 그들이 신기했다. 해가 지고 나서도 아름다운 것들은 가득한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바다와 뒤 돌면 해가 지는 찰나만큼이나 아름다운 달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멍하니 달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우리에게 뭘 보는거냐고 물어봤다.

"저기, 달이 엄청 커다래요. 충격적일 정도로요."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엄청나죠? 그쵸?' 하는 생각으로 조금은 의기양양하게. 그 아저씨는 내 손가락 끝 너머 있는 노란 동그라미를 보고서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네! 볼 생각도 못했어. 이 동네 처음이니?"

달을 보고 신기해 하는 우리는 아무리봐도 외지인이었던 것일까?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듯 물었다.

"아뇨, 그건 아니예요. 근데 이런 달은 처음이에요."

"그렇구나, 너네는 주변에 쉽게 익숙해 지지 않는 사람들인가보네. 난 사실 요즘 하늘을 잘 안보거든."







 1Q84라는 소설을 떠올렸다.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 소설은 참 좋았다. [두개의 달이 뜨는 밤, 변화하는 시간]이라는 컨셉도 참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그 소설의 달이 저렇게 생겼을까?


소설에서 두개의 달이 뜨는 것에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달을 보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내 일상에서 커다란 달들을 놓치고 살았을지 모른다. 수 많은 아름다움을 익숙함이라는 단어에 숨겨놓고, 그런 것은 없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 커다란 달을 두고 즐거움을 달라며 약물로 환각을 일으켜야만하는 사람들처럼, 새파란 하늘이 유명한 곳에 살면서도 하늘을 몇 번 보지 않는다는 그 아저씨처럼.


조금 뒤 다시 돌아갈 그 곳에서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고 보니 오늘은 누군가가 가진 특별함과 잊어버리곤 하던 익숙함에 대해 생각하던 날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생각, 쉽게 지워버리는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두가지는 특별하고 아름답던 것들에 의해 떠올랐다는 점이 아이러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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