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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Aug 12.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22. 태평양을 넘어서하는 이별

https://youtu.be/ZgJ1HeTPLGs

오늘의 영상




나는 늘 잠을 자고 싶어했다.

푹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 힘들었던 것들이 싹 날아가는 듯한 단잠.

나의 교환학생 생활은 그런 단잠 같은 시간이었다.

푹 자고 일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지금. 깨기 싫다는 욕심도 마음 속 한가득이다.


교환생활은 나의 많은 것을 바꿨다. 무엇보다도 나의 한계를 넓혔다.

내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문화권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한국에서만 살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이 모든 새로운 가능성들은 나라는 사람이 더욱 크고 자신만만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단순히 한국에서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원한다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내가 한국 생활에서 목매던 것들에 더이상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었다. 나의 삶에 여유와. 수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 시간들이었다. 샌디에고에서 매일 바다를 보러 글라이더 포트에 가면 있던 드넓은 잔디밭이 삶에 생긴 기분이다. 그 곳에 무엇이든 키울 수 있는. 


그 안에서도 나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어머니 아버지께 미국에서 보냈던 편지에 이런 말을 썼었다.

“금문교가 수 많은 노동자의 목숨과 눈물과 땀 이후에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우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어머니 아버지의 생의 반짝임과 아름다움을 희생하여 탄생한 생명일테니까요.”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막연히 ‘교환학생을 가보고 싶다’라는 내 환상은 실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저, 서울의 삶이 전부일 것이라 믿고 또 팍팍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샌디에이고에서의 삶이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준 수많은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그들을 떠나는 순간은 눈물이 끊이지 않는 아쉬움이었다. 이별하는 것이 아쉬워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되지 않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5살이 된 기분이다. 샌디에고에서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그 곳에 더 있어도 어차피 마주했을 이별이 있었을 것이라고 위안했다.졸업을 하고, 더 이상 기숙사에 살지 않으면 또 다른 시작이 필요하게 되므로.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내 이별이 쉬운 것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


늘 작은 농담들로 밖에 나갈 수 없는 순간들을 재미있게 해 주던 룸메이트들, 처음 미국에 온 나와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잭, 멕시코 & 로드트립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새로운 여행을 만들어 준 제나이, 처음 갔을 때부터 나의 든든한 유학생 친구였던 호진이와 기쁨이, 출발 5일 전에 알래스카 티켓을 예매하고 다녀올 수 있게 해준 주희, 유럽으로의 여행을 기획해 준 안드레아, 내 교환의 전부를 함께 한 연대 교환학생들까지. 마지막 쿠스코 하우스의 20명 가량을 모두 인사하던 순간은 내가 얼마나 여기서 사랑 받았는지 기억하게 했다. 다시 볼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쩌면 평생,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마지막으로 뉴욕을 여행하면서도 여행 후 샌디에이고로 다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들의 흔적이 나에게 진하게 남아, 더 이상 이전의 나를 기억할 수 조차 없었다. 돌아가서 이 친구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 또 다시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고, 저녁에 술을 먹다가 RA에게 사과하고, 다음 방학에는 어디를 같이 여행할 지 고민하고 싶었다. 뉴욕에서 한국에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오니 돌아가는게 실감이 났다. 눈물이 왈칵 또 쏟아졌다. 한참을 막고 있던 눈물을 막상 흘려보내니, 몇 방울 말고는 나오지도 않았다. 샌디에이고로 돌아가고 싶었다. 샌디에이고 안에 있다고 해도 이별은 막을 수 없는 일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당장 내 눈 앞에 서 있는 이 수많은, 그리고 마음 아픈 이별들을 미루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은 다시 먹고 싶은 것 처럼, 또 그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교환학생이 그토록 재미있던 이유는 이 사람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또 머릿속을 스친다. 또 이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눈물이 또 날 것 같다. 미간이 아린 느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두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곳곳에 가득하다. 그 작은 서울 안에서만 사랑하고, 감동하던 내가 더 많은 것들을 마음과 머리에 품을 수 있어 감사하다. 여러 나라에 흩뿌려져 있는 나의 사랑의 조각들을 기억하며, 가끔은 그것들을 직접 보고 감동하며, 나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물들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오늘의 밤을 풀어 내일의 아침을 만들자. 오늘 밤의 이별을 느껴 아픔을 지닌 새파란 아침을 마주하자. 이슬 속엔 밤의 추움이 갇혀 있으니까, 그런 아픔이 반짝이는 아침이 되자. 오늘의 잠은 그런 의미가 있다. 나의 아침은 이제 입체적이다. 수 많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아픔이 가득한 곳이 되었으므로. 그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픔을 인정하며 나아가자. 그것이 나의 마음을 의미있게 하는 일이다. 아름다워서 아픈 기억들 속에는 나의 웃음이 있고, 그들의 애정이 있고, 고난하던 순간들이 있다. 모든 기억을 가지고 날카롭게 차갑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아침 공기를 한껏 폐부에 들여보자. 오늘의 이별은 내일의 만남이고,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아름다움일 것이니. 그렇다면 오늘의 파란 아픔은 날 찌르는 듯하지만, 결국 나와 내일은 주황빛의 석양으로 포옹할 것이다.


여름에 베로나라는 이탈리아의 소도시에서 이 그리운 사람들 중 몇명을 만나기로 했다. 베로나를 가는 기회에 그리스를 가서 아크리비를 만날 수 있을까, 프랑스에 가서 몽생미셸을 볼 수 있을까. 아직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들 중 일부를 베로나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 그 계획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영원히 못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가 된다. 더군다나, 미국 문화의 어쩌면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문화를 실제로 볼 생각을 하니 괜히 설레고 신기하다. 진짜 문화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사실 친구들을 만나는 것 만큼이나 크다. 베로나가 지금은 그래서 나의 위안이고 도피처다.


그리고 내가 흘리는 눈물에는 현실을 두려워하는 감정들도 섞여 있다. 그들을 떠나는 지금, 조금 무섭고 조금 긴장된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다시 그 힘든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원하던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못 가지면 어떻게 하지- 또 이런 걱정에 사로잡히가도 한다. 일단은 교환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많은 기업에 지원할 생각이다. 다양한 삶의 형태에 열려있을 수 있는 7개월이 있었으므로.

다시 현실에서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잠이어야 하는데,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잠이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나의 현실 속에 이런 달디 단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았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려 한다. 평생 이 잠을 잘 수 없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잠의 흔적을 톡톡 깨우고서는, 그 즐거움이 나의 일상과 함께하게 할 것이다. 흔적을 박박 지우는 데메만 익숙했던 내가, 이제는 흔적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게 되다니. 흔적이란게 감사하기도 하다니.





집으로 가는 길, 유난히 예쁘던 빛.


창에 오렌지 빛이 드는 게 참 좋다. 모든 세상이 같은 색으로 물드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뭔가 빛이 드는 모든 곳이 따뜻할 것 같은 착각. 저 시간 정도는 착각하고 살아도 되지 않나- 하면서, 아닌걸 알아도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언젠가 한번은 진심으로 따뜻하다고 믿을 수 있길 바란다.


샌디에서는 사실 꽤 자주 믿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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