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
엄마는 어릴 때 내가 순둥이었다고 했다.
"근데 네가 유일하게 우는 때가 언제였는지 알아? 더울 때였어. 여름에 열대야로 더울 때 네가 엄청 울면서 못 자고 그랬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더울 때마다 발밑에 선풍기를 틀어줬단다. 지금은 다 큰 어른이라 덥다고 울 수는 없지만, 너무 더우면 온몸이 땀으로 눈물이 난다.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여름이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땀 한 방울 안 나는 겨울이었다.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벌레 등 다른 것들도 물론 있지만, 그 더위 앞에서 나는 너무 취약했다. 언제나 뽈뽈거리며 할 일을 찾아다니지만 여름방학만 되면 나는 집순이가 되곤 했다. 집에서 충분히 요양하지 않고, 밖에서 에너지를 썼다가는 겨울보다 두배로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힘들었던 방학은 1정 연수 때문에 매일같이 연수원에 다녔던 때였다. 잘 쉬지 못하고 개학했던 그해 2학기는 온갖 잔병치레를 겪어야 했다.
이렇게 더위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무슨 생각으로 동남아에서 먹고 살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봐도 무모했다. 그래도 한낱 같은 희망이라면 더위도 적응이 될 줄 알았다. 난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니까. 살아보니 더위는 적응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후드티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면서도 땀 한 방울 안나듯이 내가 더위를 많이 타는 건 그냥 타고난 기질 같은 것이다. 나는 매일 여전히 너무 덥고, 너무 덥다.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덥다고 짜증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운 게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덥다는 말을 해본지도 오래된 거 같다. 종종 햇볕이 너무 뜨겁다, 타 죽을 거 같다.라는 말은 하기도 하지만..
베트남은 일 년 내내 더운 동남아 국가다. 그중에서도 특히 호치민은 가장 남쪽 지역이기 때문에 체감온도가 40도를 넘어가는 날이 꽤 빈번하다. 그래서 대낮의 거리를 걷는 건 개나 외국인뿐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람들도 잘 걸어 다니지 않는다. 단 5분만 걸어가는 거리여도 웬만하면 차를 불러서 타고 이동한다. 그러니 더위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일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그나마도 해가 조금 진 4시 정도부터는 한국의 어느 여름보다 시원하기도 하다. 열대야가 없어서 밤에 호수를 따라 러닝 하는 사람들도 많다. 엄청 뜨거워서 알조차 익어버린 건지 이곳에는 의외로 매미나 모기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온화하고(열대지만) 일관된(갑작스럽게 비가 오긴 하지만) 이곳의 날씨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대비하지 않아도 되고,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음은 좋은 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왼쪽 얼굴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빛이 이제는 익숙하다. 더위를 싫어하는 나지만 이렇게 더운 나라에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겨울 나라에 갔더라면 좋아하던 겨울마저 싫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트남에 온 덕분에 더위도, 여름도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더운 여름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매일같이 청량한 호치민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