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일상 ㅣ그랩, 오토바이

#H2

by 송생님

도로에 서서 간절히 한 남자를 기다린다. 그 남자가 길을 잃을까봐 핸드폰만 쳐다보며 계속 걱정한다. '나는 당신을 기다려요' 메시지를 보내보지만 그는 답이 없다. 그냥 다른 사람을 찾아볼까? 아니야.. 그래도 열심히 오고 있잖아. 모퉁이를 돌아 나에게로 달려오는 그에게 신짜오 반갑게 인사를 건네본다.


내가 찾던 그 남자, 바로 그랩 기사님


베트남에서의 주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교통체증이 발생하기 쉬운 도로 환경에 그나마 빨리 가려면 차보다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빠르다. 호치민에도 이제 지하철이 개통하고, 잘 사는 동네에선 깨끗한 전기버스가 다니고 있기는 하나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에 가려면 아무래도 오토바이가 가장 합리적이다. 가격은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데, 개인적인 이동수단인 점을 고려하면 아주 저렴한 값이다. 자주 다니는 학교, 테니스장, 피부과, 마사지샵 정도는 우리 돈 천원정도로 이동이 가능하니 말이다. 다만 비가 오는 경우에는 같은 거리에도 가격이 올라가고 차가 잘 잡히지 않는다.


처음 오토바이를 탔을 때가 기억난다. 며칠은 무서워서 택시만 타고 다니다가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동기가 오토바이를 불러서 탔다는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내서 오토바이를 불렀다. 처음에는 기사님의 옷자락을 어설프게 붙잡고 있다가 이내 오토바이 뒷쪽을 잡으면 된다는 걸 알고 꽉 붙들고 이동을 했다. 내리고 나니 팔이 제법 아팠다. 그래도 내가 오토바이를 타다니! 내가 제법 베트남 사람같아서 신났던 게 벌써 일년반 전이다.


오토바이를 한 천번쯤 타니 이제는 뒷 손잡이를 붙잡지 않고 핸드폰을 보면서도 잘 탄다. 하루는 우리집에서 1군(호치민에서의 시내)까지 가던 날이었다. 20~30분 이동에 들을만한 노래를 찾던 중 '초여름'이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다. 한국도 이제 초여름인가보네, 아무 생각없이 틀었던 그 영상의 첫 곡이었던 The Volunteers의 Summer라는 노래가 충격적으로 좋았다. 그랩 기사님만이 아는 골목 지름길을 따라 달리며 보이는 베트남 로컬의 풍경들과 아직은 이방인같은 내 모습이 노래와 너무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로 노래를 들으며 오토바이를 타는 시간을 무척 즐기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드라이브를 하며 생각을 비우는구나. 30년차 뚜벅이에겐 생경한 경험이었다.


오토바이를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어플이 그랩이라 오토바이 호출=그랩으로 통칭해서 말하기도 하나 사실은 베(be)나 싼(Xanh)같은 다른 어플들도 존재한다. 베는 비교적 저렴하고, 싼은 깨끗한 전기차가 오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데, 그랩은 차 호출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 물건 배송 등 다른 기능들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설치해두게 되는 어플이 된다. 각각의 브랜드 색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에 누가 내가 부른 기사님인지 단번에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주 가끔 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브랜드의 오토바이를 호출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 타기 전에 내가 부른게 맞는지 확인하는 게 필수다.


오토바이를 많이 타다보니 기사님들마다 각지각색의 성향을 발견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가령 낮에 오토바이를 타는데 긴 신호에 걸렸을 때 나무 밑 그늘에서 신호를 대기한다던가(그렇지 않으면 뙤약볕 밑에 40초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탈 때 내 쪽으로 오토바이를 살짝 기울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센스있는 기사님을 만나면 기분이 꽤 좋다. 내가 부여하는 별점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별 다섯개로 보답을 해보기도 한다.


제법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는데, 친구들이 놀러올 때마 항상 오토바이 타볼래? 하고 권한다. 어떤 친구들은 재밌겠다며 타겠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괜찮다고 사양한다. 타고나면 또 타고 싶다고 분명 얘기할텐데, 베트남은 오토바이를 타봐야 여행했다고 할 수 있다며 괜히 한번 아쉬움을 표현해본다. 하지만 내가 이 곳에서 살지 않았더라면 나도 아마 타지 않는 쪽에 속했을 것이다. 나는 본투비 겁쟁이니까. 세상은 이렇게 내가 경험하는 만큼 넓어진다.


사실 내가 경험해봐야 할 세계가 아직 더 남아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내가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해보는 일. 한국에서도 뚜벅이였던 나는 호출하면 언제든 오는 교통수단이 있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편리했지만, 운전을 하던 동료 친구들은 차가 제때 안 오는게 영 답답하다며 오토바이를 사서 끌고 다녔다. 엄청 혼잡해보이는 교통 체계지만 그 나라 방식에 맞게 금세 적응해서 다니고 싶은 곳에 다니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게 부럽기도 하다. 나도 때로는 뚜벅이의 알을 깨고, 자차의 세계로 가보고 날아가보고 싶지만 사실은 아직 무섭다. 갑자기 어릴 때 멋모르고 했던 진로 적성 검사에서 '공간 감각 능력'이 좋아 적합한 직업으로 운전기사랑 항해사가 나왔던게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베트남에서 운전은 공간 감각 능력이 아니라 기세로 하는 건데?


친구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간 여행에서 제법 폼을 잡아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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