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일상 ㅣ테니스

#H1

by 송생님


테니스 레슨을 받은 지 어언 1년- 1년이 어디 명함 내밀 짬은 아니지만- 느낀 점이 있다면 레슨이란 건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뭘 못하는지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


1년 전만 해도 테니스를 1년쯤 배우면 테니스가 취미에요. 라고 말할 정도는 될 줄 알았다. 웬걸, 실전에서는 코치님이 정확히 나를 향해 건네는 친절한 공 따위는 없었다. 첫 레슨 다음날 이것이 전완근이오, 이것은 그걸 연결하는 인대이니라.. 를 몸소 느꼈다. 내 몸에 밥 먹을 때만 쓰이던, 그러나 분명하게 붙어있던 팔 근육의 짜릿한 통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포츠를 하기엔 너무 빈약했던 팔 근육을 보완하기 위해 끊었던 헬스도 다시 시작했다.


테니스를 배운 지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무슨 용기에서인지 테니스 동호회에 들어갔다. 그것은 아마 초심자의 패기였으리라. 집에서 가까운 동호회는 초짜들을 안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왕복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동호회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카톡방에 들어갔을 때 구력을 닉네임으로 설정해 달라고 해서 ‘4개월’이라고 적었다. 나처럼 4개월, 반년 등 1년 미만의 닉네임들이 더러 있어서 안심했다. 물론 나의 4개월은 주 2회뿐인 레슨과 그마저도 비가 올 땐 취소되고 마는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비밀이었다. 그와 달리 그들의 닉네임 속 '4개월'은 꽉 찬 4개월 혹은 카톡방에 들어온 지 1년이 넘었지만 영영 바뀌지 않는 (1년) 4개월이었음을 깨달은 건 첫 모임에서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제일 못 치는 사람이었다. 포핸드보다 형편없던 서브는 6번의 시도 중 6번을 실패하여 하는 이와 보는 이의 민망함을 자아냈다. 그래도 박수쳐주며 받은 격려와 깍두기와도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펼쳐준 동호회 사람들에게 지금도 무척 감사하다.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진탈퇴했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게 돌아가리..


베트남에서 테니스 레슨은 코치, 볼보이, 테니스장 대여를 합쳐서 1시간에 4~5만 원 정도이다. 나처럼 2:1 레슨을 받는 경우 그것을 둘로 나눠내기 때문에 훨씬 더 저렴해진다. 그렇게 둘이서 한 시간을 치고 나면 땀으로 샤워를 하게 될 만큼 힘들다. 내 테니스 짝꿍이 어쩌다가 회식으로 결석이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테니스장은 천장이 없어서 비가 오면 레슨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우기가 시작되는 6월부터는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도 수업이 종종 취소된다. 어떤 날에는 주 2회 테니스가 모두 취소되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했는데 취소가 돼서 그대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경우 레슨비가 취소되기 때문에 양반이다. 가장 운이 나쁜 건 레슨이 시작된 이후 비가 오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레슨비가 환불되지 않는다. 언제 비가 오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 시스템이 웃기지만, 꽤 합리적인 듯하다. 그렇게 취소된 날에는 바로 집에 가기 아쉬워서 테니스 짝꿍과 수다라도 떨고 오지 않으면 안 된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테니스에서 난관을 겪지만 나의 경우에는 허리 힘을 제대로 못 쓴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조금만 무리해도 허리가 아팠던지라 남들보다 허리를 쓰는 일이 더 조심스러운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아니다, 사실은 원체 뻣뻣하고 리듬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춤도 잘 못 춘다. 측근의 말에 따르면 춤추는 로봇 같다고. 슬픈 건 골프나 피클볼 같은 다른 구기종목을 배울 때도 똑같은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이다. 용한 철학관을 찾아다니며 똑같은 사주팔자를 듣고 오는 사람처럼 "허리를 좀 써보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헤엑 이 사람도 알아버렸군,하며 놀라곤 한다. 그래도 그 말을 들은 직후에는 허리를 써서 부드럽게 라켓을 쳐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공이 날아오는 실전에서는 다시 테니스를 치는 로봇이 되어버린다.


이제는 테니스를 배운 지 1년이 넘었다. 황당하게도 요즘에는 가장 기본인 포핸드를 가장 못 하는 중이다. 그래도 헛웃음만 나오던 서브를 꽤 성공하기도 하고, 백핸드나 슬라이스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아주 느린 속도이기는 하나 실력이 늘고 있음에 좌절하지 않아 본다. 주말에 테니스 같이 치자는 말에 자신 있게 예스를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오늘은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테니스 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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