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일상 ㅣ사랑과 연애에 관한

#H4

by 송생님


호치민에 오고 부쩍 외로웠던 어느 밤

제목에서부터 홀린 듯이 듣던 노래가 있었다.



사랑 없는 공허를 그대도 아나요

사실 다들 이렇게 사는지 몰라요


사랑 없이 사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사람 하나 없는 게 뭐 그리 서러워서 울까요

우린 매일 외로울까요




그날 밤 겸의 사랑 없이 사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라는 노래가사는 나에게 콕콕 박혔다. 위로받을만큼의 어떤 슬픔이 나에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던 해외생활과 그 적응을 물심양면 도와준 친절한 동료들, 그리고 동료 이상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친구들까지. 한국이 많이 그립지 않을 만큼 북적거리는 일상을 보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주 회식이나 취미 레슨, 학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 집에서 잡념에 빠져있을 외로운 시간도 별로 없었다. 때때로 즐거운 일이 생겼고, 대화를 하며 많이 웃고,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나 달라진 것은 한국에서 내 마음을 괴롭게 만들던 연애를 멈추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장거리가 된 연애는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게 물리적인 거리 앞에서 얼마나 무의미해지는지. 사실은 믿음 따위는 예전부터 별로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혼 적령기의 나이에 상대를 두고 해외를 오기로 한 선택은 완전히 이기적이었으니까. 그 슬픔은 남아있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지만 나도 그 모든 안정감을 포기하고 그 선택을 내렸다. 그때는 무모했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뻔한 이별이 한차례 지나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전화하던 저녁 시간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드디어 애인이 아닌, 착한 딸이 아닌, 안부를 묻고 경조사를 챙겨야 하는 타인이 아닌 나로서 존재하게 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적당한 관계 단절은 체했을 때 손을 따는 거처럼 조금 아프지만 해방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허했다. 나는 이제 기대지 않고, 온전히 서있을 수 있게 되었지만 또 다시 기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기댔을 때 느껴지는 그 포근함과 책임감 같은 것들이 그리워졌다. 사랑 없이 사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가요.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해외에 사는 주변 친구들도 사랑을 좇아 다양한 형태의 연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나 한인타운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치민에서는 생각보다는 많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독서모임, 러닝모임도 있고, 마음만 맞으면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쉽다. 사랑과 연애가 동의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마음먹고자 하면 한국에서처럼 쉽게 연애를 할 수 있다. 지고지순한 연애는 이미 질리도록 해봤잖아. 이곳은 자유와 젊음이 넘치는 해외니까 나도 가벼운 연애를 즐겨볼까? 따분한 일상을 인스턴트처럼 채워보고 싶던 순간도 있었다.


“너 인스타 보니까 엄청 재밌게 지내더라. 근데 난 괜히 해외 나갔다고 안 하던 짓 하는 거 별로야. 물론 넌 좀 많이 유교걸이긴 하지만.. 알지? 그게 너의 매력인거.”


어느날은 대학 때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을 하다가 (이 친구도 해외에 살고있다) 친구가 나한테 뜻하지 않은 일침을 날렸다(?) 평소라면 왠 뜬금없는 잔소린가 싶은 말이 찬물에 세수하듯 정신차려지는 말로 다가와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워졌다. 맞아. 내가 어디 땅에 있든, 법이 얼마나 허락하든, 그곳의 문화가 얼마나 개방적이든 그건 다 핑계고 나는 나야. 가벼운 연애같은 건 애초에 나랑 맞지 않았다.


해외에서의 연애는 다양한 사정과 슬픔을 동반하기 쉽다. 누군가는 해외에 남아있고 누군가는 떠나야 하는 상황을 언젠가는 직면하기 때문이다. 돌아갈 시기를 조율해야 하기도 하고, 돌아가버리고 나면 결국 관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말들, 그런데 왜 번번히 영원할 거 같은지 모를 일이다. 마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 겸연쩍은 마음처럼 말이다. 그래서 먼 타지에서도 이렇게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물리적인 거리를 노력으로 좁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느낀다.


사랑은 노력으로 하는게 아니라는 사람들은 노력하여 얻고자 하는 사랑의 고귀함을 모른다. 사랑을 지켜내는 일이란 실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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