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5
사람은 우주야. 우리는 아무도 제대로 알 수 없어. 심지어 나조차도 나를 제대로 모르는데. 인생에서 잠시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을 무슨 수로 알건데. 그런데 사람들은 때때로 착각해.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 단언하지.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듯이. 그런데 아니야.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같은 건 없어.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계속 변한다는 것 뿐이야.
MBTI 유행이 채 가시기도 전에 테토/에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걸 보면 인간을 군집화해서 이해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그런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며 그런 류의 대화를 피하곤 했지만 내 알고리즘에 자꾸만 MBTI 글이 뜨는 거 보면 나도 사실은 분류가 안되는 사람에게 혼란을 느끼는 순간이 적지 않았나 보다. 차라리 MBTI가 뭔지 좀 알면 속이 시원하겠다 싶은 마음이다. 아 이 사람 이래서 이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 이런 사람들은 이러더라, 그런 사람들에겐 이게 당연하지. 이렇게 사람을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용도로는 MBTI도 제법 나쁘지 않다. 평생을 이해못했던 나의 한 부분도 한철 유행 덕분에 이해하게 되었으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교직원만 해도 100여명이 넘고, 다양한 지역과 성별, 나이대, 국적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다르다는 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므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일도 적지 않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교직문화, 세대적 공감대를 가지고 만난 이들이지만 그래도 좋은 '교육'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열정은 한 마음이기 때문에 부딪히고 돌아가더라도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실로 여기 근무한 만 1년동안 최소 3년치의 교직 경험을 쌓았다. 끝없는 수업연구, 연구회 활동, 동호회, 다양한 재외학교의 업무와 다문화 학생들, 한글학교까지 하나하나가 다 버릴게 없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재외에서 근무를 한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현실적으론 집과 차 등 자산을 처분해야 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 특례나 학교 적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비혼이 아닌) 미혼인 경우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내던지는 이들은 평균의 사람들보다 모험적이고, 대담하다. 그래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누구 하나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며 벌써 해외생활만 10년이 넘어가는 사람,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 교사가 된 사람, 유학과 어학연수, 워홀 등의 해외 경험이 많은 사람 등..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평범한 인간이나 다행히도 이 곳에 와서 내가 좀 더 특별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교내 연수에서 TCI 검사를 진행했었다. 가까이에 앉은 사람들끼리 결과지를 공유하며 얘기를 나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극추구의 기질이 높게 나타났다. 자극추구 성향이 높은 경우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때로는 충동적이며, 모험적이라는 뜻이다. 사실 검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극추구가 낮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백분위 86이라는 꽤 강력한(?) 수치가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안심됐다. 앞으로도 나의 기질을 믿고 또 다른 일을 도전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랄까. 연수자는 MBTI보다는 차라리 TCI검사가 더 성격을 잘 반영한다고 얘기하셨지만, TCI검사보다는 아무래도 MBTI가 좀 더 '자극적'이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한동안 MBTI를 기준삼아 인간 군상을 분류해낼 것이다.
자극추구말고 나머지의 영역에서는 사람들마다 가지각색이었다. 자극은 추구하지만 위험 회피 성향은 짙은 경우도 있고, 수많은 협업 업무가 넘치는 학교지만 연대감이나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경우도 있었다. 해외 학라는 똑같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역시나 각자만의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한동안 누군가 나한테 여기 왜 오게 됐냐고 물으면 나는 으레 답하는 말이 있었다. "저는 수업 연구 좀 원없이 해보고 싶었어요." 굉장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답인 걸 알지만 사실 이만큼 진실한 대답이 또 없다. 나는 혼자 사는 것도 걱정됐고,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는, 가족과 친구를 좋아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믿는게 내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런데 학교에서는 계속 권태감이 들었고, 교육자로서 좀 더 성장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곳에 왔다. 지금 돌이켜보니 권태는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도전과 새로움 없이 흘러가는 내 인생 전반에서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만 2년차가 되니 이 곳에서의 삶도 사실 조금씩 권태감을 느끼고 있다. 늘어지는 나를 채찍질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자극추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