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릴 때 보도블록의 흰색 타일만 골라 밟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미신이나 운명 같은 것을 별로 믿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물론 마음이 약해질 때만큼은 그런 것들이 쉽게 내 심리상태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가령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는 그 당시 애인에게 뭐가 떨어졌다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그와 내려왔다, 밑으로 갔다, 가라앉았다 등 온갖 우회적인 표현으로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애썼는데도 그 시험에서 결국 ‘떨어졌다’. 역시나 미신 같은 것보다는 단단한 내면이 더 중요한 것인거늘.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는 신앙심 때문만은 아니지만 사주나 신점 같은 것에 의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에 의해 내 삶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이 신촌에 용한 철학원을 다녀온 썰을 풀던 날 다른 이들이 거기 번호 알려달라고 호들갑을 떨 때 가만히 메모장에 철학원 전화번호를 받아 적어뒀던 것은 비밀이다. 그러나 물론 가진 않았다. 지금 그 메모 어디에 있더라.
사람은 누구나 힘들 때 의지할 곳을 찾는다. 그것이 가족일 때도, 애인일 때도, 종교일 때도 있고 사주나 신점을 보는 것도 그런 일환일 뿐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하게 됐을 때 나 몰래 내 사주를 보고 왔다. 내가 스무 살을 재수학원에서 보내는 동안 엄마는 한 번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마음이 많이 불안했단다. 딸내미가 또 시험을 못 보고 세번째 수능을 볼까봐. 다행히 두 번째 수능은 썩 망치진 않았지만 제 실력 발휘까진 못 간 탓에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전공으로 진학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근데 네가 고삼 수능 볼 때는 뭘 해도 안 풀린다 그러더라. 올해는 시험운이 있었대. 그리고 엄마가 또 깜짝 놀란 게 네가 교육 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거야 글쎄. 너 교대 간다는 얘기는 나오기도 전인데 말이야.”
사주팔자가 그런 것인지 나는 정말 교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교대에 가면 초등교사가 되는지도 잘 몰랐으니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이렇게 막 하는 게 맞았나 아찔하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대학생활도, 직업인으로서도 마치 오래 꿈꿔왔던 사람처럼 잘 살아냈다. 내가 고등학교 내내 가려고 마음먹었던 경영학과를 갔더라면 어떻게 살았을지 이젠 상상도 안 된다.
때늦은 짝사랑에 마음이 힘들던(?) 시절 친구가 심심하면 신점을 한번 봐보라고 했다. 난 해외에 있는데? 요즘엔 영상통화로도 점을 볼 수 있단다. 친구에게 받은 연락처로 신점 언니와의 전화약속을 잡았다. 대망의 약속날,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세워놓고 앞에 앉았다.
“ 00 씨는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돼요. 하고 싶은 걸 못하면 병나.”
하고 싶은 걸 못하면 병이 안 나는 사람도 있나. 심지어 나는 하고 싶은 걸 좀 못해도 잘 참는 사람인데. 첫마디부터 뻔한 말에 신뢰를 잃었지만 신기가 있는 언니라 그런지 왠지 내 고민이 술술 나오는지라. 에라 모르겠다, 그냥 익명의 누군가에게 연애 상담이나 털어놨다.
“그 사람 지금 너무 바쁘니까 연애 같은 거 못해. 내년 봄쯤에나 다시 연락해 봐.”
내년 봄이면 한참 남았는데 지금도 안 되는 인연이 그때 이어지겠나 역시 순엉터리구나, 싶었지만 얘기 하나는 기깔나게 잘 들어줘서 그날 이후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운명이 아니라는 건 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정말 그다음 봄쯤 그 사람과 잘 만나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지만.
사주든 신점이든 언제나 맹신하려는 태도는 경계하지만 그냥 이따금 삶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한 번쯤 인생을 남의 눈으로 들여다 보기에는 또 이만한 것이 없다. 잘 풀린다면 기분 좋고 안 풀린다면 잘 풀리게끔 애써보는 마음으로. 대운이라는 내년을 기대해 보며 사는 게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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