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3코스, 가끔은 눈물이 약이 된다

모든 것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순간에 나오는 눈물

by youlive

그런 날이 있다. 왜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기분이 무척이나 좋지 않은 날 말이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취미로 즐겨보는 편이다. 한 남자 유튜버가 라이브에서 본인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마음이 아팠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지만 그의 슬프고 아픈 마음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남자나 여자나 느끼는 감정은 똑같은 것은 사실이다. 단지 사회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감정을 삭이는 것뿐. 사회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하는데 그렇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세상 아닌가. 인간이면 때로는 눈물을 흘릴 때도 필요한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춥고 바람 부는 날씨를 선호하지 않는다. 겨울과 여름 중에서 무엇을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히 '여름'이라고 대답한다. 이번 여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찌든 더위였지만 그럼에도 여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부는 추운 가을과 감기에 쉽게 걸릴 것 같은 겨울이 너무나도 내게는 힘들다. 추울 때는 내 모든 기운과 기력을 앗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여기서 나도 한 번씩은 까먹는 내 몸에 칼에 베이는 듯한 더한 신체적 증상이 있다. 이 신체적 증상은 정신까지도 앗아가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추울 때 걸으면 '극한의 간지러움'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바디로션을 습관적, 규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핸드크림으로만 몸에 발랐던 것이 '고문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해파랑길 13코스에서는 허벅지 간지러움으로 인한 고통을 20분에서 30분 정도 제대로 겪어야만 했다.



해파랑길 13코스, 길이 19.9km, 소요시간 약 6시간 30분, 난이도 쉬움. 주요구간은 양포항 -> 금곡교 -> 구평포구 -> 장길리 낚시공원 -> 구룡포항까지다. '양포항'에서 줄곧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수려한 바다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종점 '구룡포'에서는 일제강점기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머물던 '일본인 가옥거리'를 관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내 마음속에서 난이도를 쉬움에서 보통으로 바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양포항에서 출발하여 바다 옆으로, 때로는 차도로 길을 걸으며 (이제는 도로 걷는 일이 쉽게 느껴진다.) 구룡포항까지 가는 수월한 구간이었지만 그날을 결코 쉽지 않은 코스였다.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엄마와 나는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20분 정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기온이 뚝 떨어진 데다가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자 몸도 점점 춥다는 느낌이 들며 몸을 떨기 시작했는데, 뭔가 기분이 싸했다. 기분이 싸하다는 것은 알 수 없는 불안감, 찜찜함, 혹은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나는 '추위'로부터 바로 그 싸함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양포항'까지 가는 버스에서 보는 '알록달록한 단풍산'의 풍경을 보고 몸과 감정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 풍경을 보고 있는 버스 안에는 바깥과 다르게 따뜻한 온도 덕분에 서서히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양포항에서 내리고 걷기를 시작하면서 또다시 '감정기복'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고 체력이 약해진 상태였다. 나는 언제까지 감정의 들쑥날쑥함에 벗어날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는 바람만 불었다면 걷기 시작하자마자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에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비가 오지 않고 흐림'이라는 기상예보 및 날씨를 몇 번이고 확인체크를 해둔 상태였다. 흐린 날에는 우산을 챙기기도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으면 굳이 챙길 필요도 없어서 그날은 우산도 챙기지 않았다. 그날은 참 이상했다. 준비물을 챙기기가 싫었다. 그것이 '화'가 되었나. 바닷가 쪽으로 걸으면 걸을수록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바람이 불면서 더 세차게 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엄마께서 마침 우산은 아니고 '양산'이 있어서 그것으로 비를 막아보고자 양산을 펼쳤으나 얄미운 바닷바람이 양산을 몇 번이나 뒤집히도록 공격했다. '계속되는 우중충한 날씨에 비가 세차게 오는 것은 이젠 지쳐.'는 말이 연신 튀어나왔다. 비는 왜 자꾸 내리는 것인가. 내가 해파랑길을 걷기만 하면.



9월부터 11월까지 주말마다 우리 모녀는 해파랑길을 걷고자 하면 비가 꼭 내렸다. 비 내리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지만 어떻게든 참으면서 이때까지 해파랑길을 걸어왔던 내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더 이상 이번에는 좋게 넘어가기 힘들었다. 나는 양산을 접고 모자를 쓴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옆에는 바로 바다가 있어서 그런지 비바람은 더욱 세찼다. 내 마음은 더욱더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고, 요동까지 치기 시작했다. 이제 폭발하면 어쩌지.



그때였다. 나는 '내가 왜 겨울을 싫어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신체적인 경험을 겪었다. 엄마와 나는 잠시 정자에서 쉬다가 (정자라도 없었으면 해파랑길 13코스를 그날 멈추려고 했다) 내려와서 다시 길을 걸을 때였다. 순간 내 오른쪽과 왼쪽 허벅지에 간지러움이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큰일인데.' 맨 처음 버스정류장에서의 기분 싸함의 결과는 여기서 드러난 듯 보였다.



나는 극도의 간지러움으로 인해서 심한 통증이 왔고, 그것이 결국 눈물을 나오게 만들었다. 아, 뜨거운 눈물이었다. 해파랑길을 하면서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고 눈물 때문인지 온몸이 뜨거워졌다. 다행히도 순간적으로 허벅지도 뜨거워지자 갑자기 방금까지 겪었던 허벅지 전부의 간지러움과 고통은 잠잠해졌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간지러웠다가 잠잠해졌다가를 여러 번 했다. 그리고 비가 그쳤다. 바람이 서서히 잠잠해지더니 아까 느꼈던 간지러움은 사라졌다.



분명 깨달은 바는 있다. 날씨가 건조해질수록 몸도 건조해지기 때문에 바디로션은 귀찮더라도 발라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하체 위주로 말이다. 1년에 겨울마다 몇 번을 경험하면서도 왜 몸에 보습이나 영양크림을 발라야겠다는 것은 사소하게 느껴 무시해 버리는지 모르겠다. 결국 지난 10년간 간지러움을 겪었던 나는 실컷 울고 난 뒤에 알게 되었다. 내 몸도 건강도 신경을 좀 써야 할 것을.



또한 내가 지금 긴 여행을 즐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다는 점이다. 나의 여행은 분명 기복이 있다. 나의 해파랑길 목표가 '걷기를 통한 마음 힐링'임에도 불구하고 '날씨' 영향과 지역 '특색'에 영향을 참 많이 받는다. 각각 코스마다 말이다. 포항코스는 바다가 무척이나 아름답고 풍광도 예뻐서 입이 쩍 벌어진다. 하지만 그에 비해 단점이 하나 큰 것이 있다. 안타깝게도 해변가에 쓰레기들이 많은 채 유지되어 있고, 총체적으로 바다 쪽은 관리가 되어있지 않아서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한 번씩 아프게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나는 걷는다. 현재의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는 말자. 50코스까지 끝까지 걷기로 한 목표가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한번더 자신에게 약속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순간은 예민해질 수 있으나 시간이 나의 이 마음과 성격을 다시 재정립해주길 바랄 뿐이다. 모든 것은 좋지는 않지만 모든 것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사람도 세상도 그리고 나도 말이다. 나는 적어도 올해 '불안해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심한 불안을 나를 미치게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불안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또다시 불안이 찾아오겠지만 괜찮다. 나는 또다시 계속 걸을 것이고 앞서나갈 것이다.



나는 잠시 몇 분 정도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에 가득 쌓여 있다가 시간이 1~2시간쯤 지날 때였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꼬였던 실이 술술 풀리듯 머리가 점차적으로 맑아지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차디찬 바람만 불고 어두워지고 있을 때쯤, 번화가에 어마어마한 불빛들과 그 번화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지나다니는 버스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 여기가 구룡포 쪽이구나.'



구룡포 근처에 위치한 13코스 종점인 '일본가옥거리'에 다다르자 휘황찬란한 홍게, 대게 맛집들이 줄지어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오후 5시 넘어서 종점에 다다를 때쯤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했다. 그렇게 13코스는 마무리되었다. 약 20km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몸은 무거운데 정신은 맑음으로 채워진 채로. 기분이 괜찮아지는 것을 느끼니 역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꽤나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나는 해파랑길을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끔은 눈물을 흘릴 때도 필요하다. 예전에는 눈물이 부끄러움이었지만 오늘은 눈물이 나에게 약이 되었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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