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4코스, 내가 나를 믿어야 한다

때로는 독립적인 갈매기처럼 살아보기

by youlive

과거를 돌이켜보면 남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모습들이 한 번씩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때 나의 모습은 자존감이라는 것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주저앉아 타인에게 사랑만 받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타인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내가 저 사람을 먼저 좋아하고 친절하게 다가가면 나한테도 그렇게 돌아올 것이라는, 결국 그것이 착각이었던 기대감, 타인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고 그렇게 살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떤 경우는 남이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그 사람을 더 좋아해서 상처받았던 일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그 사람을 좋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그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척을 하고 있었고 그에게 결국 나의 본색을 드러낸 경우였다. 또 어떤 경우에는 처음에는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배려심 있게 다가갔지만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말이나 마음이 잘 통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가 나 스스로 마음정리 후에 그를 떠난 경우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세 가지 경험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불안정한 인간관계를 10년 이상 맺어보니 이제는 다가오는 인연이나 지나가는 인연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다가왔던 좋은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더 집중해서 잘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이때까지 나에게 있어서 그저 그런 사람보다 '내가 먼저 좋아하는 사람, 내가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 내가 본받고 싶은 사람'에게 훨씬 더 잘해주었던 것이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현재는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만나면 짧은 안부나 대화를 하는 정도만 할 뿐이지 깊이 있게 대화를 하거나 어떤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인간들이 그렇듯이 나는 현재 가벼운 만남 정도를 하고 있다.



나는 노력하면 할수록 인간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으로 종종 결말을 맺었는데, 반대로 해보니 오히려 편하게 남을 대할 때 인간관계가 평등하면서도 오래갈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깨달은 나만의 인간관계의 팁이라고 할까. 목적이 있는 만남도 해보았으나 그것 나름대로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목적이 없는 순간 타인을 나의 나름대로 차단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10년이 넘어서 몇 백명의 인간들을 만났으나 지금 나에게 남은 사람들은 10명 내외 정도뿐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나만의 목적으로 살아갈 경우에는 필요이상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편은 추억으로 한편으로는 후회를 잠시 마음 한편 쪽에 담아둔 채 몇 명의 사람들과 만남을 유지할 뿐이다. 하지만 한번씩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울 때도 있다.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해파랑길이 나에게 딱 맞는 이유는 해파랑길을 걷다 보면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않을 때가 80%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곳'을 우리 모녀가 걸으면서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중인 것이다.



해파랑길을 바다를 끼면서 한없이 홀로 걸을 때 무리 지어서 다니는 갈매기들을 종종 본다.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이 많을 때도 좋은데.' 왜 나는 인간을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있는가.



해파랑길 14코스, 길이 14km, 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 난이도 쉬움. 구룡포항 -> 구룡포해변 -> 다무포고래마을 -> 대보항 -> 호미곶등대까지. 포항구간이며 포항 남구 구룡포읍에서 호미곶면까지 잇는 길이다. 모처럼 맑은 날 새벽이었다. 드디어 비가 내리지 않는 그날이 온 것인가. 마냥 설레었다. 그날은 피곤함도 별로 없이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와도 같이 가는 가족여행의 날이다. 호미곶은 10대와 20대 때 몇 번 정도 가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구룡포에서 직접 걸어서 종점이 호미곶까지 가는 길인 만큼 특별한 여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추진력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고집이 세서 시작하려면 끝까지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 성격이다. 다행히도 나이가 들수록 그러한 고집도 어느정도 죽어있는 상태지만 말이다. 어쨌든 해파랑길 끝인 50코스까지는 도전해 볼 것이다.



포항은 갈매기떼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번 포항 코스를 쭉 돌면서 느낀 점이기도 하다. 갈매기들이 수십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 정도는 내 눈앞에 손쉽게 펼쳐진다. 갈매기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다. 그들로 인해 새의 특징도 여러 개 알 수 있었다. 갈매기들은 자리를 잡고 바닷가에 착지를 할 때 절대로 서로 붙어있는 채로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떨어져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한 마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쪽으로는 절대로 가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착지를 한다. 서로 각자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나름 배려를 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갈매기에 대한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인간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먹이를 먹는 것이 다른 곳에서 먹이를 찾는 것보다도 유리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예전부터 항구나 해안에서 인간이 남긴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 재미있는 갈매기에 관한 실험을 하나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생각이 났다. 해변가에 과자 두 봉지를 땅에 두었지만 하나는 그대로 하나는 인간 옆에 봉지를 두었다. 그때 갈매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자봉지로만 다가왔다고 한다.



그냥 아무거나 먹어서 통통한 게 아니었구나. 단지 먹는 것이 있으면 보이는 대로 다 먹어서 통통한 줄 알았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주로 먹는다니 참으로 인간친화적인 것이 독특한 새다.



하지만 그런 갈매기가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내내 마음속으로는 그 새가 부러웠다. 인간으로 치면 인간관계를 적당하게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과감하면서도 대담하게 얻는 그런 사람. 우리 사회에서 인간이 한없이 괴롭고 고통이 끝이 없이 느끼는 이유는 인간관계가 적절하게 유지가 되지도 않고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고,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도 그것을 얻는다는 것이 절대로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 아니겠는가. 갈매기를 인간에게 대입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독립적인 갈매기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갈매기 같은 인간이 어디 있을까. 아니, 나는 갈매기 같은 인간은 될 수 없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잘 살아보고 싶다. 죽기 전에는 '잘 살다가 갑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미련 없이 삶을 떠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서로 의지가 되면서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도 사랑도 잘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직은 답을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때인 것 같다. 나는 심하게 방황 중이다. 이 시기가 길어진다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방황이 크게 온 이상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여러 번 주저앉을 수조차도 없다. 내가 다시 잘 살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구룡포주상절리 근처 공원에서 간단히 엄마께서 싸주신 김밥과 컵라면으로 배고픈 허기를 채웠다. 사실 나는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 많아 밖에서 특히 야외에서 밥을 잘 먹지를 못한다. 숨도 쉬지도 않고 그냥 먹었는데 그날따라 김밥과 라면이 세상 너무 맛있었다. 평범한 컵라면과 김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배가 고프면 보통의 맛도 참으로 맛있는 맛이 난다. 내가 겪는 이 모든 것에 하나의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 다양한 상황에 의미를 다르게 부여하고, 또 다르게 생각한다면 어떨까? 만약에 내가 경험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경험이라고 느낀다면 나는 언젠가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수백 번 수천번 수만 번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내가 잘 살려면 '내가 내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종교에 의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를 믿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인간은 살면서 힘든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때까지 자신보다는 남을 믿어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인간은 끝도 없이 우울해지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정신적으로 아픔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의사 선생님께서 매일 먹어야 한다는 약들로 인해서 언젠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아픔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다. 그 약들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하지만 마음에 아픔을 가진 인간들은 또다시 악의 경험을 겪었다. 병이 낫는듯 하지만 사실 나중에는 병이 더 악화되는 악의 경험. 그 누구도 아직까지 정신과에서 주는 약으로 나아진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사는 듯한 느낌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나를 위해서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내지 못하면 결국은 이겨내지 못하고 약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대인들은 지금도 마음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인간은 어떻게든 이겨내야 할 것이다. 마음은 안다고 해도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또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쉬울 수도 있다. 아직 기회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잡기 전에 내 마음속에 육체 속에 채워 넣어야 할 것은 '내가 내편이다'라는 꽉 찬 마음과 에너지일 뿐이다.




모처럼 맑은 가을 날씨처럼 다시 나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본다. 나는 계속 걷는다. 끝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직 나를 이끈 채로. 기분 좋은 에너지가 나에게 서서히 돌아오고 있고 채워지고 있을 때쯤이었다. 어느덧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한반도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인 호미곶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겨주듯이 호미곶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저 멀리 서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평화가 찾아온듯한 기분. 비록 날씨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지만, 마음 한구석에 풀어지지 않고 응어리졌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녹아서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곳 포항 호미곶에 있는 상생의 손에 서서 다시 나에게 스스로 말을 전달해본다.



"내가 남들과 상생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거야. 꼭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걸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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