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도 아름답다.
삶도 인생도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면 세상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 완전한 삶을 살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의 끝이 어딜지도 모를 정도로 삶을 즐기면서 살게 될 것이다. 한때 그러한 인생의 느낌을 나도 한 번쯤은 느끼고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을수록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내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부터 일어나기도 했고, 여러 인간관계 사건을 겪은 이후, 나의 마음은 유지는커녕 도태되거나 끝도 없이 변덕이 심해져 가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분명히 아는 것이지만 인간의 삶은 완벽하지 않다.
장태산 자연휴양림, 매일 주말마다 바다를 품에 안고 해파랑길 걷기를 하고 있지만 아주 가끔은 가을단풍과 함께 산을 오르고 싶은 날이 있다.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오랜만에 바닷가 근처가 아니라 내륙 지방 대전에서 하루를 보내는 기회가 있었다. 대전에 장태산 자연휴양림이 가을의 끝자락에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붉게 물들인 단풍이 갑자기 보고 싶었다. 대충 이것저것 가방을 싸서 집 밖을 나갔다. 한국이 가을기간이 짧아진 만큼 나에게 더욱더 소중한 계절이다. 12월이 다가오고 있는 그때, 나는 몸을 움직여서 한 번이라도 가을을 감성 있게 깊이 빨아들이고 싶었다. 붉게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산들과 나무들을 한번 안아보고 싶었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은 대전에서 대표 관광명소이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메타세콰이어 숲이 형성되어 있다. 그 울창하면서도 이국적인 메타세콰이어 숲의 경관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을 정도의 감정이 든다. 독림가(篤林家)였던 임창봉 선생님께서 평생을 나무와 숲에 대한 열정을 쏟아서 민간인 최초로 자연휴양림으로 지정을 받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둘러보려면 최대 2~3시간일 걸리는 만큼 큰 명소라서 시간을 넉넉히 준비한 채로 여행 및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주말마다 어디론가 떠나는 삶에 아주 만족을 한다. 더 이상 인생에 무엇이 아쉬운 게 있을까. 하지만 실제로 나의 삶은 꼭 그렇지도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니,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나는 늘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불안과 불만을 늘 가지고 살았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 있었다. '공부를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학교선생님들께서는 회초리로 탁자를 두드리시며 학생들을 세차게 몰아붙이듯이 내놓는 주장이 있으셨다. 그 주장과 의견은 한결같았다. "공부 못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대학 못 가면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어! 그러니까 지금 잘하란 말이야. 지금!"
그때당시 나는 조용하면서도 수용적인 성격을 가진 학생이었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맨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늘 내가 잘하고 있다고 다짐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쪽 구석에 이유 모를 괴로움과 외로움이 늘 깃들여져 있었다. 공부를 해서 높은 성적을 얻어야겠다는 압박감, 친구들 사이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라는 절망감, 공부를 열심히 해도 잘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모든 감정은 대학생이 되었을 입학식에서 끝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4년 내내 하면서 여전히 부정적이고 불안하면서도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때 늘 생각한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도리어 억울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한다고 좋은 곳에서 취업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었구나. 그것을 고등학생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왜 끝도 없이 부정했었지?" 나는 결국 대학교를 다니기가 너무 싫어서 1년 휴학을 하고야 말았다. 원래는 휴학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다양한 경험을 한 후 학교에 돌아왔지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곳도, 나의 삶을 정해주는 길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과 방황을 멈추기 위해서 스펙을 어느 정도만 쌓고 바로 교육 쪽으로 취직을 하였다. 그리고 6~7년이 지나고 난 뒤 나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학생들 교육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대한민국 현시점에서 '공부'는 학생들의 각자 꿈을 위해서 출발하는 공부가 아니라 '좋은 대학과 좋은 취업'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 공부'가 아닌 자신만의 개성과 성격 그리고 학습 스타일을 전부 다 죽여놓거나 제쳐둔 채로 '이렇게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위한 공부.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여전히 책가방과 책의 양은 전부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같았다. 공부의 주요 과목인 국수사과영에서는 더 이상 벗어나질 못하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학생들. 여전히 그들에게도 의문만은 남겨둔 채.
'공부는 하기 싫은데 해야겠지? 그런데 공부한다고 잘 살 수 있는 세상도 아닌데 꼭 해야 한다고?' 2025년 지금 대한민국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있지만 마음은 모두 방황중이다. 진짜 자신만의 인생의 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제대로 알려면 높은 곳을 한번은 올라가야 한다. 높은곳으로 추천되는 곳은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볼 수 있거나, 또는 형제바위에 올라가면 된다. 가을의 단풍의 풍경으로 붉게 물들인 나무들이 줄지어진 모습이 숲과 같이 광활해서 더 멋진 메타세쿼이아 산림욕장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다리에서 사진을 마구마구 찍고 있었다. 형제바위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나름의 인생샷을 찍기 위함이 분명했다.
역시 어디를 가든지 분명히 목표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하나의 목표를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한다면? 줄을 서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형제 바위에는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있는데 우선으로 대기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 먼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애간장을 태울 것이다. '언제쯤 내 차례가 올까?'
나는 기다리기 싫었다. 더이상 누구나 찍기를 바라는 그곳에서 인생샷을 찍지 않기로 했다. 인생샷을 통해서 값진 인생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가도, 의사가 되어도, 높고 가격이 비싼 집을 사도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서울 강남에 산다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게 바로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인간은 다 가진다고 행복한 존재가 아니다. 인생의 내것은 자신의 마음에 이미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내 것을 찾는 공부를 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보기 좋아 보이는 것만을 어떻게든 얻으려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올바른 길이라고 하는 것인가.
나는 형제바위에서 정상을 찍지도 않고 내려와서 중간쯤 어디, 다시 메타세콰이어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사람들이 잘 오지는 않지만 사진을 찍기에도 어정쩡한 위치이지만 어느 곳에 있던 나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상태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왔다. 형제바위 산에서 내려온 뒤로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봤을 때도 그 나무는 멋있었는데 특히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형제바위 또한 늠름한 모습이 아주 보기가 좋다. 이번 여행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도 걸어보고 앉아서도 몇분동안 있어본다. 이것도 좋았다. 조금씩 여행을 하다 보면 나만의 진정한 여행의 시각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가을이라고 단풍을 보려고 여기 온 것은 맞다. 하지만 가을을 굳이 여행을 통해서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을은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인생은 모두가 원하는 목표로,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한 순조로운 과정으로만 걸어갈 필요는 없다. 나만의 길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각자 자신만의 삶이 있는 거니까.
가을도 끝이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니 따뜻한 커피가 생각이 난다. 커피가 생각나니 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인생은 어쨌든 어떻게든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