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다
가끔은... 해파랑길은 어쩌면 나에게 어려운 도전인 것 같다. 이 길들을 걷다 보면 어쩌다 한 번은 크게 소리를 치고 싶거나, 당장 이 길을 끝내버리고 싶거나, 바로 그만두고 싶다는 부정적이고도 절망적인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니까 말이다. 30년 이상 살아오면서 나는 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나에 대해 설명을 한마디 정도로 한다면 나는 '상당히 예민하고 불행을 잘 만드는 사람'의 유형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30년이나 되는 짬밥이 있기에 불안을 조금은 줄이기 위한 행동들은 몇 가지 정도 지키고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고 고집부리면서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나에게 이유 없이 친절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보이기 싫어서 은근히 까탈스럽게 구는 것도, 일이든 공부든 열심히 하다가도 성질이 나면 한 번에 양단해 버리는 것도, 전부다 내가 신경성이 높고 예민해서 그렇기에 그 불안도를 줄이고 최대한 방어하는 태도 또는 행동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남에게는 '철없고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이가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없이 나의 이 기질은 여전하다.
이렇게 예민한 사람들이 남들이 보기에는 무지막지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내 존재가 늘 불안함과 친구인 동시에 스트레스에 엄청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 같은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을 바로 받아들이거나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 즉, '불행하게 사는 능력'을 선천적 기질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좋지 않은 생각을 부풀리다 보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나는 가만히 놔두어도 될 현실을 계속해서 좀 먹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듯하면서도 일상을 헤쳐나가는 힘이 점차 약해지는 것을 처음엔 어렵게 받다가 나중에 갈수록 당연하듯 쉽게 받아들인다. 곧바로 과정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부르는 정신적 아픔에 도달하게 되며 그러한 정신병에 잘 걸리게 된다. '도저히 잘하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천지야.'라는 식의 자신을 깎아내리는 표현을 하면서 평범한 인생에 고통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예민한 사람들이다.
이상하게도 이러한 사람들이 진절머리 나게 더 싫은 자신의 모습은 이것이다. 어디 티라도 나면 좋은데 생각보다 그들의 증상이 죽을병으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안과 공황증상, 소화불량, 속 쓰림, 어지러움, 구토 같은 증상이 있지만 살이 빠졌다가 늘어났다가 표정이 어둡거나 할 뿐이다. 심각한 것 같아서 신체 검사해 보면 어디 몸에 특별히 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마음의 병으로 자신을 스스로 죽음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또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창의성이 높아서 '예술에 대한 갈망과 인생에 대한 아름다움'을 인생에서 크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능력. 그때만큼은 그들도 행복을 무한히 느낀다. 물론 그 행복이라는 감정을 일상 속 내내 느꼈으면 좋겠건만.
대신 어떻게든 일상생활 속에서 상상력으로 마구 뿜어내어 행복을 일부러 만들어낸다. 잠시잠깐의 행복을 느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상상에서 무거운 현실로 돌아오면 불안함과 동시에 허무함과 씁쓸함을 느끼는 것도 그들의 몫.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다.
해파랑길 17코스는 마치 1~18코스까지의 경험 중에 제일 '이때까지의 코스를 무사히 해냈다'라는 마치 큰 보상을 받는 듯했다. 이번 17코스가 딱 걷기에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길이 전부 '평지'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해파랑길 17코스, 길이 18km, 소요시간 약 6시간 30분 난이도 보통이지만, 사실상 난이도는 쉬움인 코스이다. 주요 지점은 송도해변 -> 포항여객선터미널 -> 여남동숲길 -> 포항영일신항만 -> 칠포해변까지. 여기서 역방향으로 시작하여 칠포해변에서 송도해변까지 걷는 것으로 목표를 잡고 엄마와 걷기를 시작했다.
엄마와 나는 역방향으로 '칠포해변'을 지나 '포항영일신항만' 쪽으로 가면서 바다와 함께 길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푸른 바다에 자유롭게 몸을 맡기면서 즐기는 서핑보드를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로 온통 하늘과 바다가 푸르렀던 그날. '이곳이야 말로 내가 받는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 걸었던 곳 중에서 제일 푸르고, 자유로워 보이고, 따뜻해 보이고, 제일 빛이 나 보이는 바다라고 할까.
하지만 나는 '여남동숲길'에 들어가서 겨울 대나무들을 보면서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 한 번 더 희한하게 불행한 생각을 만들어냈다. 나는 또다시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지겹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건 습관이다. 불안을 만드는 것, 불행을 만드는 것 모두. 나는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일까.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이 일들을.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일들을. 다 쓸모없고, 쓸데없으며, 에너지 낭비만 되는 일들을.
언젠가는 또다시 스멀스멀 내면의 불안은 찾아올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불안을 극복하고자 하고 그대로 마음을 두니 어느 정도 불안함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포항여객선터미널' 옆에 도로길을 쭉 따라 걸었다. 이 정도 평탄한 길이라면 어깨도, 무릎도, 발목도 아프지 않은 최상의 컨디션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날은 날씨도 따뜻했다. 이 따뜻한 하루에 나는 다시 세상에 감사함을 느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인데 예민한 사람들의 유일한 또 다른 장점은 '몸에 자잘한 병들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기보다 오래 산다는 것'이다. 입밖으로는 '나 같은 건 빨리 죽어야지. 오래 살아서 뭐 해.' 이런 말들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러니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이 오래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그들은 조심성이 많아서 '바로 행동을 하지도 못하고 도전적이지도 못하다.'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도 고민과 걱정에 휩싸이는 것이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심해질 것을 대비하여 그냥 도전적인 것과 위험해 보이는 것은 빨리 포기를 하거나 인생에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솔직히 이 부분은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꽤 편한 부분이기도 하다.
최고의 장점은 아까도 얘기를 했듯이 예민한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행복을 크게 느낄 때가 온다. 그 순간은 마치 '고귀한 보물'과 같다. 인생에 불행을 굉장히 많이 자주 느끼는 것에 비해서 아주 잠깐의 행복을 소중하고 감성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것만을 위해서, 미래에 '언젠가는 한 번은 행복이 다가오겠지.'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민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과 대화'이다. 그들은 절대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는 속에서 내뱉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상당히 메말라 있기 때문에 예민한 사람들은 더 어렵게 사는 것은 맞다. 대신 자신 스스로 사랑한다거나 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럭저럭 잘 살아간다. 그들은 그 사랑 하나만으로도 만족감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삶이 힘들 때 누군가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하면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이는 굉장히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보통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나,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까지는 결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에. 하지만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게 되면 끝까지 그 사람을 사랑한다.
자신의 감정 휘둘림과 어디에서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무조건 필요한 사람. 물론 다른 방법도 있는데 일기를 쓰듯 글을 매일매일 쓰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든 하루 중에 한 번은 그렇게 해야만 그들이 하루하루를, 이 세상을 무난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
어느덧 '송도해변'에서 평화의 여신상을 바라본다. 평화. 비현실적 이게도 나는 이 세상에서 늘 그랬듯이 마음속 평화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남들도 그러길 기도한다. 나는 어쩌면 이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한 번씩 감정기복이 심하고 또 고꾸라지는 경험을 겪으면서도 이 또한 삶의 여정 중 하나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도 상관이 없다. 언젠가는 시련이 와도 내가 희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삶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가지는 완벽한 인생이기 보다도 작은 것이라도 내가 만족만 할 수 있는 인생, 내가 어떤 존재에 어떤 인간들에게 애정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생, 마음속 뜨거운 열정대로 살아가는 나만의 인생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며, 자유이며, 마음의 평화로 가는 길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