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고등학교 불어 시간이었다. 프랑스어에서 나비와 나방은 모두 ‘빠피용papillon’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짝 충격을 받았다.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가진 두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라니.. 프랑스인들은 시력이 나쁜 걸까? 아니면 그곳에는 ‘나비나방’이라는 또다른 생명체가 있는 걸까?
600만 년 전 정글에서 살던 고릴라 무리 중의 일부가 초원으로 떨어져 나왔다. 아마도 약해서 밀려난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인간의 조상이 되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도, 강인한 뿔도, 튼튼한 피부도 지니지 않은 인간이 살아남아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야기 놀이를 잘 해서라고 생각한다.
풍성하게 이야기를 나누려면 많은 단어가 필요하다. 단어를 만드는 방법은 이것은 ‘나’이고 저것은 ‘너’이고 그것은 ‘나무’이고... 하며 이름을 붙이면 된다. 그러면 테두리가 그어져 존재가 탄생한다.
나이 먹을수록 세상을 조각내어 붙인 이름표들이 점점 늘어났고, 그 때문에 나의 세상은 퍼즐 조각들이 수북하게 쌓인 테이블 같이 되어버렸다.
가끔 태어나서 처음 눈을 떴을 때 어떻게 보였는지 궁금하다. 나조차 나눠지기 전의 상태 말이다. 통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