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마망>이라는 거대한 거미 조각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과 감동이 기억난다. 그 작품으로 인해 나는 루이스 브르주아라는 작가를 알게 됐고, 그 세계에 매혹 당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모습도 닮고 싶어진다. 내가 가진 그녀의 화집에 할머니가 된 루이스 브르주아의 사진이 있다. 완고하게 자리 잡은 깊은 주름, 냉정한 눈빛이 그녀의 작품만큼 포스 있다고 느꼈고, 나도 나이 들어서 함부로 말을 못 붙일 만큼 강한 아우라를 풍기면 좋겠다고 동경했다.
좋아하는 요리책이 있다. 오래 전에 구입한 후 하도 뒤적거려서 책장이 너덜거렸다. 음식 솜씨 좋은 주부인 저자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옆에서 이야기하듯 조곤조곤 살뜰하게 설명해주었고, 그 요리법을 읽다보면 음식을 만들어 먹기 전에 이미 배부른 느낌이 들곤 했다.
책이 인기가 있었는지, 좀 더 화려한 모양새로 재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또 구입했다. 저자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마침 그 책의 표지에는 아담한 할머니 한 분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그 표정을 따라 함께 미소 지으며 문득 나이 들었을 때의 내 얼굴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라도 주뼛거리지 않고 길을 묻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내 안에는 두 가지 모습이 모두 존재할 것이다. 모습에는 살아온 세월이 투영된다고 하는데, 나도 궁금하다. 할머니가 된 나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