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햇빛이 찬란한 날 어느 집 마당에 널어놓은 이불을 보며 ‘나도 저렇게 널어 말리면 좀 뽀송뽀송해지려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 존재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축축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멀리 이동할 때 새는 하늘의 기류를 타고, 물고기는 해저의 조류를 탄다. 그 흐름을 타기까지는 열심히 날개 짓하고 헤엄쳐야겠지만, 일단 합류하고 나면 힘을 뺀 채 흐름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정체성이 바뀌는 순간이다. 작은 나에서 큰 나로. 모두인 나로 말이다.
나이 드니 자연스럽게 몸의 힘부터 빠진다. 예전처럼 번쩍번쩍 무거운 물건을 들 수도 없고, 필이 꽂힌다고 밤을 새며 작업할 수도 없고, 좀 무리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몸살을 앓곤 한다. 이런 몸의 변화를 투덜거리기만 했는데, 몸과 마음은 하나라더니 덕분에 마음의 힘도 조금씩 빠지고 있다. 신념이라고 이름 붙여 절대 타협할 수 없던 생각들이 ‘뭐, 그럴 수도 있지..’하며 빼꼼히 틈을 만들어 낸다. 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나를 살짝 들어올린다.
조금 가벼워졌나보다.
<리트리버> 162x112 혼합재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