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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 Jan 16. 2023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예쁜 민진이

2년이나 너의 담임을 한 건 나의 행운이야.


고학년만 지도하던 내가 처음으로 저학년을 맞게 되었을 때 그 떨림이란.

긴장, 걱정, 설렘, 조급함 여러 감정이 혼합된 떨림이었다.

2013년 3월 2일 아침 2학년 아이들을 만났다.

초등담임교사에게 3월 2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날 어떤 이미지를 가져가느냐가 1년을 좌우한다.

그런 내가 12살, 13살 아이들만 만나다가 처음으로 10대가 아닌 아이들을 내 아이들로 맞은 것이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아기들이었다.

너무 말랑하고 뽀얗고 소중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고학년 학부모와는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 우진이에게 말해요. 친구야랑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


'친구야'라니!!

고학년만 담당하던 근엄한 교사였던 나는 이런 단어를 듣고 당황스러우면서도 행복했다.

작은 세계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니, 아기들은 고학년들보다 정리를 훨씬 잘했다.

착착착!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사물함에는 색연필, 사인펜, 색종이, 교과서들이 자동정렬이라도 누른 듯 반듯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 흐뭇함이란.

교사는 이상한 곳에서 흐뭇함을 느끼는 직업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아이들 중에서도 내가 오랫동안 기억하는 한 아이가 있다.

바로 민진(가명)이다.

민진이는 빨간 뿔테 안경을 낀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얼굴을 한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서 나온 말들이 동화 같지 않았다면 나는 그 아이를 빠르게 기억에서 지웠을 것이다.

하지만 민진이는 말도 동화 속 주인공처럼 했다.


"엄마께서 선생님 드리라고 하셨어요."


"엄마"라는 주어에도 "께서"라는 조사가 붙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도 민진이는 바른 말씨와 단정한 행동, 반듯한 글자,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안달복달하게 했다.

(물론 티는 나지 않았다. 나는 근엄한 교사니까-)

특히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 시간에 내 얼굴이 뚫릴 것처럼 집중해 주는 모습은 매일매일이 감동이었다.

민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렇기에 수업 시간 중 교사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들으려 했고 새로운 내용들에 놀라워했으며 겸손하게 활동에 참여하며 순수하게 즐거워했다.

민진이는 교사가 불러주는 알림장 내용을 꼼꼼하게 적었고 숙제를 빈틈없이 해왔다.

받아쓰기 연습, 일기, 수익 정도라 숙제가 많지는 않았지만 안 해오는 아이는 늘 있었다.

하지만 민진이는 그것들을 완벽하게 해왔다. 그것도 완벽한 글씨로!

민진이 부모님이 특별히 학교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민진이의 부모님과 통화를 한 건 2년간의 민진이를 담임기간 중 단 한 번 뿐이었다.

그것도 내가 먼저 궁금해서 연락을 한 것이었다.

상담주간에 저학년 부모들의 99%는 상담 신청을 하는데 민진이의 부모님은 상담신청을 하지 않아 모르고 계신가 싶어 전화를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민진이가 잘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상담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너무 아쉬웠다.

민진이의 부모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딸을 키우신 건지 그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민진이 부모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민진이의 일기를 읽는 것이 좋았다. 민진이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4학년인 오빠와 함께였다.

오빠와 맛있는 것을 먹은 이야기, 오빠와 놀러 간 이야기, 오빠와 다툰 이야기...

아홉 살 아이가 정성 들여 쓴 화목한 가족의 이야기를 단 한 명의 독자가 되어 감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2013년 한 해를 민진이에게 많은 힐링을 받으며 보냈다.

그해도 학교생활은 다사다난했고 행복하기만 한 날들은 아니었음에도 민진이가 있어 2013년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1년 뒤 2015년 나는 또 한 번 민진이의 담임이 되었다.

반이 4개나 있었음에도 그 반을 뽑은 것이 행운이었다. (반 뽑기라고 불리는 그 찰나의 순간이 1년을 좌우한다!)

사실 2015년에 만났던 아이들은 모두 예뻤다.

그 중심에 민진이가 있었고 민진이는 1년 새 많이 자라 있었다.

이제는 아기가 아니었고 소녀가 되어 자신의 꿈을 상상하고 성숙한 청소년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책을 열심히 읽었고 여전히 수업태도가 좋았다.

글씨는 2학년 때만큼 힘을 주어 연필을 잡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반듯했고 예전처럼 선생님을 향한 애정을 티 나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교사로서 존경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11살짜리를 너무 성숙하게 표현했는가?

민진이는 그렇게 속이 깊은 아이였다. (내 새끼니까 그렇게 보인 건가.)

2015년도 민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민진이는 그 이후로도 나에게 종종 연락을 해주었다.

교사의 사랑을 아이들은 분명히 느낀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년 동안 잊지 않고 교사에게 연락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아이는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응원해 주었고 나도 아이의 삶을 응원했다.

이제는 우리 민진이도 2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다.

요즘은 민진이의 연락이 뜸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민진이는 지금도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성숙한 청소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민진이의 선생님으로서 여전히 민진이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다.


2013년 2학년 아기들은 색칠도 참 흐뭇하게 잘했다.

내 필명인 민용에서 "민"은 민진에게서 따왔다.



민진아 괜찮지?

넌 이름도 참 예쁘다.

선생님은 딸 이름을 지을 때 네 이름을 따오고 싶었는데 선생님 신랑이 반대해서 못했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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