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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 Jan 18. 2023

새봄, 너 같은 딸을 낳았어

선생님 놀아주세요


새봄은 이름만큼이나 반짝거리는 아이였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에게도 시간 만나면 "우리 새봄이, 우리 새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단발에 자로 자른 듯한 일자 앞머리가 새봄을 새봄답게 했다.

교사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한다. (하지만 기억은 오래 한다.)

그러나 송새봄 톡톡 튀는 세 글자는 처음부터 가슴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새봄이가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아이가 나를 유난히 좋아해서였다.

저학년 아이들은 대개 담임선생님을 유일신처럼 따르고 사랑해 주며 엄청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봄이에게 받는 사랑이 더욱 특별했던 건 새봄이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아기 같았기 때문이다.

새봄이는 몸은 9살이었지만 마음은 5살이나 6살 정도였던 것 같다.(자이언트베이비?)

새봄이는 쉬는 시간마다 또래 아이들과 놀려고 하기보다는 선생님과 놀려고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교사에게는 쉬는 시간 10분이 엄청 바쁘기 때문이다.

수업하는 동안 쌓인 메신저 수신함도 확인해야 하고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의 협조가 들어오면 그 10분 안에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아이들의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쉬는 시간이지만 물 한잔도 마시기 힘들다.

그 와중에 새봄이가 "선생님 같이 놀아요"라고 말하며 색종이, 실뜨기, 공기 등을 나에게 가지고 온 것이다.

해맑은 아이의 요청을 어떻게 무시할 수가 있겠는가?

새봄이의 요청을 항상 들어줄 수는 없었지만 나는 새봄이와 "함께 놀기"에 응답했다.

그 시간은 내게도 아주 유쾌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1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했지만 초등학생과 함께 놀 수 있던 유일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그 해에는 학급 학예회가 있었다.

9살 아이들이 완성도 높은 화려한 공연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9살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9살 어린이들은 칼군무가 아닌 틀리거나 말거나 당당하고 작고 힘찬 몸짓, 3단 고음이 아닌 열심히 외운 노랫말을 힘껏 외치는 마음을 무대에 올린다.

나의 학예회 철학은 그렇다.

몇몇의 여자아이들은 당시 인기곡이었던 가수 시크릿의 <별빛달빛> 안무를 췄다.

그중에 새봄이가 있었다.

안무라고 해봤자 귀여운 몸짓과 손짓이었지만 나의 학예회 철학에 똑 들어맞는, 엄마미소가 터져 나오는 완벽한 공연이었다.

나는 가수 시크릿의 <별빛달빛> 영상을 찾아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새봄이의 <볓빛달빛>은 몇 십 번을 돌려봤다. 너무 치명적이었다.


한편 새봄이는 놀이와 춤추기에는 흠씬 취하는 아이였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았다.

새봄은 다섯 살의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다섯짤이 공부는 무슨 공부?

나는 아이가 놀면서 공부할 수 있게 수업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도 놀이에 온 정성과 마음을 다했다.

그것만으로도 새봄이를 사랑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교사로서 내가 준비한 활동에 아이들이 푹 빠진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어느새 1년이 지나 새봄이는 3학년이 되었고 나는 새봄이가 그리웠다.

나의 새로운 교실을 귀요미가 머리를 빼꼼 내밀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새봄이는 3월 첫날 딱 한 번밖에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새봄이는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사랑에 빠졌겠지.

나는 아쉬우면서도 대견했다.

새봄이는 3학년 선생님께도 사랑받으리라.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게 다였다.

그저 그 아이의 푸릇푸릇한 세상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새봄이가 생각난다.

사실은, 그걸 뛰어넘어 나는 새봄이를 닮은 아이를 낳았다.

나는 새봄이를 (다시) 키우는 것만 같다.

그 아이의 천진무구함, 맑음, 사랑스러움, 순수함, 나를 향한 눈빛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저런 진지한 질문에도 새봄이는 선생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했다.

삐뚤빼뚤하지만 반듯하게 쓰려는 노력이 들어갔던 새봄 이의 글자를 아직 기억한다.



새봄아 선생님도 너를 정말 정말 많이 사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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