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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1. 2021

혼돈 속 인간의 존재 이유

<제로 법칙의 비밀> 해석을 통해 알아본 인간의 존재 이유.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꾸준히 제기되어오는 가장 기초적이며, 가장 심오한 질문이다. 수많은 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탐구하였지만, 전 인류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필자의 이름인 "이기적 해석가"의 모티브였던 <이기적 유전자>의 작가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이 그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그보다 더 적확한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영화 <제로 법칙의 비밀>을 코언 리스(크리스토퍼 왈츠)를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탐구를 담은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명시적인 정답을 제시하는 방법 대신 오답들을 제(除)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 코언 리스(Qohen Leth)가 일을 하는 와중 전화가 울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받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얼마 전 한 통의 전화가 왔었는데, 일에 열중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라면 광고 전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코언은 그 전화가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화였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코언은 '그 전화'를 꼭 받아야 하기에 회사에 재택근무를 신청하지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회사의 회장은 '제로 법칙'을 증명하는 조건으로 재택근무를 시켜주겠다고 한다. 코언은 이 제안을 수락하지만, 제로 법칙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회장은 그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증명을 부추긴다.


 영화에 나온 '제로 법칙'은 우주의 탄생이 하나의 점에서 시작한 것(대폭발 이론)과 같이 우주의 죽음 또한 점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이론이다. 즉, 수학적인 계산의 결과가 항상 점의 질량인 0이 나와야 한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제로 법칙은 0이 100%이어야 합니다'라고 하는 이유이다. 단편적으로 파악한다면 제로 법칙은 코언을 미치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제로 법칙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행위이다. 왜 그럴까?


 제로 법칙이 성립한다고 가정해보자. 우주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0이라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인가? 인간은 죽기 위해 존재하는가? 코언 리스가 삶의 존재 이유를 알려줄 것만 같은, 놓친 전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그의 이름 자체가 생명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상징한다. 영화에는 코언이 자신의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는 동료에게 반복적으로 이름을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Qohen Leth라는 이름은 Qoheleth를 암시하는 단어이다. 이는 생명의 의미에 대해 질의하는 전도서의 이름이다. 결국 코언 리스는 그 자체로 생명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제로 법칙을 증명한다면, 인간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제로 법칙의 비밀>에서는 인간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종교와 자극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즉,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아닌 것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맨컴 회사의 회장(맷 데이먼)이 현대의 종교가 내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코언을 감시하기 위해서 십자가상의 머리를 자르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행위 등은 인간의 존재 이유가 결코 종교는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이다. 또한, 베인스리(멜라니 티에리)라는 여성을 등장시켜서 코언을 자극하기도 한다. 코언은 한때 베인슬리의 모습에 이성을 잃고 자극을 추구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베인슬리와 만나기도 하고, 그녀와의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베인슬리가 코언에게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그는 따라가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에 베인슬리가 없는 해변에서 일몰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그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자극이 결코 삶의 의미가 아님을 반증하는 장면이다. 첨언하자면, 그의 집인 성당 옆에 성인 용품점이 있지만 그곳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도 이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 존재 이유는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고민하는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답은 나올 수 없겠지만, 본인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설혹 제로 법칙의 증명에 성공하더라도,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니다. 필자조차도 인간의 존재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존재 이유를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산다면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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