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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0. 2021

이 시대의 사냥꾼들에게.

<더 헌트> 해석과 마녀 사냥

"야, 그 소리 들었어? A가 B 했대!" 참으로 간단한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의 파급력과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간접적인 화법으로 책임이 전가되기에 쉽게 말하고 다닐 수 있기에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가 되기도, 가장 연약한 치부가 되기도 한다. 물론 사람들은 날카로운 칼 끝만을 보고 무기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마녀 사냥.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는 16세기, 마녀 사냥이 성행하던 때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5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16~17세기에 주로 진행되었던 마녀 사냥은 기독교를 와해시키는 이교도를 잡아낸다는 일념 하에 자행된 조직적인 살인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악마와 마법의 존재를 믿었고, 사회에 숨은 마녀들이 악마의 지시를 받고 기독교를 향한 믿음을 저해시킨다고 믿었다. 정부에서는 이런 자들을 찾아내서 없애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결속력 강화, 사회 유지 등의 기능을 기대했다. 결국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들과 전염병, 기근 등의 책임은 마녀들의 것으로 돌아갔고 마녀 사냥은 정당화되었다. 처음에는 기독교에 반대하는 자들을 화형에 처했다고 하나, 시간이 감에 따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병을 가진 사람들 등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들먹이며 무고한 자를 죽였다고 한다. 마녀 사냥은 르네상스 사상이 퍼지던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악습임에 분명하다. 직접 화형시키던 이전의 방식이 아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방식만 교묘히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을 같다.


 덴마크의 국민 배우 매즈 미켈슨(칼스버그 맥주 광고 속 그분 맞다) 주연의 영화 <더 헌트(Jagten)>는 주인공 루카스(매즈 미켈슨)가 마녀 사냥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유치원 원생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는 유치원 선생님 루카스를 좋아한다. 마음을 표현하고자 루카스 선생님께 편지를 쓰지만 루카스는 그 편지를 받지 않고, 어린 클라라는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클라라가 퇴원을 앞두고 아그네스 선생님께 루카스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가 자신의 오빠에게서 들은 성(性)적인 발언을 하게 된다. 아그네스는 루카스가 아이에게 성행위를 했다고 생각하고, 유치원을 다니는 부모님에게 알린다. 그날부터 루카스는 친구들로부터 멀어졌고, 점점 동네와 격리되기 시작한다. 그가 무죄를 받고 돌아왔음에도 마을 사람들의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루카스에게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관객은 루카스가 아무런 성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보여준 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제 3자의 모습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의 우리를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하고 가혹한가. 영화가 사건의 전말을 보여준 것은 관객이 루카스에 대한 연민을 느끼길 바라고 의도한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임을 느끼도록 한 구성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라는 말로 마녀 사냥을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엔딩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화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버전이고, 나머지는 블루레이(Blue Ray)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버전이다. 영화에서는 사냥을 나간 루카스 옆 나무에 총알이 박히며 마무리된다. 총을 쏜 남자는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이 장면을 본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실루엣 속의 남자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한다. '그 실루엣 속의 남자가 클라라의 오빠 아니냐', '아니다, 루카스의 아들이다' 등 의견이 오갈 것이다. 여기서 실루엣 속 남자의 정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관객이 또 다른 마녀사냥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블루레이 판에서는 실루엣의 남자가 쏜 총에 루카스가 사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이는 마녀 사냥으로 루카스가 희생되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마무리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엔딩을 선호한다. 우리의 본모습을 잠시나마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헌트>는 마녀 사냥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경종을 울리는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도 또 다른 사냥감을 찾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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