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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May 16. 2023

에너미

자기 검열 가득한 현대인

“지옥과 저승은 아무리 들어가도 한이 없듯이 사람의 욕심도 끝이 없다“. 잠언 27장 20절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이야기이죠. 현대인은 흔히 문명인이라고 합니다. 문명인은 자신이 가진 욕망을 숨길 줄 알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현대인은 깔끔하고 세련된 겉모습과는 달리 그 내면에는 수많은 욕망을 숨기고 삽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부터, 성적인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말이죠.


 역사학과 부교수로 일하는 아담 벨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수업을 하고, 리포트를 검토하고, 밤이면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습니다. 어느 날, 동료 교수가 아담 벨에게 영화 한 편을 추천해 줍니다. 그는 돌아가던 길에 비디오 판매점에서 추천해 준 영화를 구입합니다. 우연히 영화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한 조연 배우를 발견합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세인트 클레어. 본명은 앤서니 세인트 클레어 입니다. 아담 벨은 흥분하여 앤서니를 찾기 위해 정보를 모읍니다. 전화번호와 집 주소까지 알게 됩니다. 아담 벨은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앤서니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외의 한 모텔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에너미>는 혼란스러운 영화로 유명한데요.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앤서니는 아담 벨의 분신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합니다. 몇 가지 장면을 살펴봅시다. 먼저, 초반에 아담 벨은 자신과 앤서니의 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찢어진 사진을 꺼냅니다. 이는 후반부 앤서니의 집에서 나온 온전한 사진과 동일합니다. 둘째, 아담 벨의 어머니는 그에게 “너는 삼류 영화배우 꿈을 좀 접어야 해”라고 말합니다. 이때 잠깐 등장하는 블루베리 또한 하나의 단서입니다. 블루베리의 상징은 마지막에 살펴보도록 하죠. 셋째, 헬렌은 앤서니로 변장한 아담 벨에게 “학교는 어땠어?”라고 묻습니다. 넷째, 아담 벨이 수업하는 내용에는 기억의 창조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다섯째, 앤서니가 등장하는 영화의 제목은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입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아담 벨의 뜻으로 앤서니가 탄생했습니다. 이 외에도 찾을 수 있는 단서들은 많습니다.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합시다.


 아담 벨은 미혼에 역사학과 부교수이고 앤서니는 영화배우에 임신한 아내 헬렌을 두었습니다. 왜 아담 벨은 앤서니를 창조했을까요? 아담 벨이 수업하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명언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이후에는 독재자가 통제를 얻는 방법에 대해 수업합니다. 교육의 제한과 엔터테인먼트를 이용한 방법이죠. 1980년대 우리나라의 3S(Sex, Screen, Sports) 정책과 일맥상통합니다. <에너미>는 초반에 아담 벨의 반복되는 일상을 제시합니다. 수업 - 리포트 검사 - 섹스의 반복이죠. 아담 벨은 통제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에 반해 앤서니는 통제 바깥에 있습니다. 아담 벨이 가지지 못한 오토바이와 멋진 집, 예쁜 아내와 함께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죠. 억압받고 자신감 없는 아담 벨과는 달리 여유로운 앤서니입니다. 아담 벨이 지나가는 굴다리 벽화 속 파시스트 경례는 이런 현대인의 자기 검열과 통제를 상징합니다.


 <에너미>의 처음과 끝은 이어집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영화의 처음과 연결하면, 키를 들고 있는 아담 벨이 지하 세계 모임으로 향하며 연결됩니다. 이는 ”모든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수업 내용의 연장선 상입니다. 아담 벨은 또다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할 것입니다.

 아담 벨이 앤서니를 찾는 이유를 아담 벨은 모른다고 표현합니다. 아담 벨은 검열당한 자이기에 ”왜? 나를 찾았나?”라는 질문의 대답을 모르는 건 당연합니다. 앤서니는 아담 벨의 욕망의 분신입니다. 앤서니는 메리(아담 벨의 여자친구)의 오금과 다리, 하이힐을 보며 아찔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초반에 거미를 밟는 하이힐과 앤서니 옷장 속 하이힐 등 하이힐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하이힐은 하이힐 페티시를 가지는 앤서니, 더 나아가 아담 벨의 모습을 암시합니다. 결국 앤서니는 삼류 영화배우이자 멋진 스즈키 오토바이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아담 벨의 욕망의 분신입니다.


 그렇다면 거미는 무슨 의미일까요? 앤서니와 같은 욕망의 상징입니다. 앤서니가 등장할 때 거미가 도심을 활보합니다. 앤서니가 죽은 이후 거대한 거미는 사라지죠. 결국 거미는 욕망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거미줄과 유사한 모습이 영화 상에 많이 등장합니다. 트램의 엉킨 줄, 깨진 유리창 등이 대표적입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가진 욕망과 페티시로 짜인 거미줄에서 살아가는 거미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욕망을 숨긴 채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굴다리 벽화 속 파시스트 직장인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페티시는 성적 흥분을 느끼는 요소입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숭배의 대상입니다. 각자는 각기 다른 페티시를 가졌지만 자기 통제와 검열로서 숨깁니다.


 <에너미>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 깊습니다. 아담 벨이 헬렌을 보러 갈 때 거대한 거미가 놀랍니다. 아담 벨이 다시 욕망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거미는 앤서니의 과한 욕망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담 벨이 지하 세계로 향하자 거미는 다시금 부활합니다. 아담 벨이 향하는 지하세계는 욕망의 에덴입니다. 그 에덴(Eden)으로 향하는 아담(Adam)의 모습은 상징적이죠. 욕망의 에덴에 있는 사람들은 각계각층으로 다양합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아담인 이유는 그를 통해 현대인을 대표하기 위함입니다. 성경 속 최초의 남자가 아담이듯, 아담은 대표성을 가집니다. 욕망의 에덴 속 선악과는 바로 블루베리입니다. 앤서니와 아담 벨은 블루베리를 좋아하죠.

 

 정리하자면, <에너미>는 아담을 통해 자기 검열 가득한 현대인의 모습을 제시하자면 그 뒤에는 각기 다른 페티시와 숭배 욕망을 가진 모습을 담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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