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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화폭삼아 12지신을 그리는 김종호 작가

편완식 미술 전문기자

by 뉴스프리존

14~ 21일 더엠파트너스 ‘운명과 이상 그 사이’전

"대리석과 화강석의 색감과 놀다보면 고뇌 사러져"

12.jpg 석공처럼 작업하는 김종호 작가


캔버스 대신 돌을 화폭삼아 작업하는 김종호 작가의 돌그림전이 9월 14~ 21일 강남 더엠파트너스에서 열린다. 전시제목은 ‘12지신, 운명과 이상 그 사이’이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뇌가 담겨있다.


“12지신을 돌에 그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이들이 많아요. 많은 좌절이 동기가 됐지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일이 무산되면서 자신감과 추진력을 잃고서 부터지요.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확신한 일 마저도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모든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며 애써 스스로를 변호해 보지만 노력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얻기가 어려웠지요. 의도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조여오는 것들이 나를 자꾸 작고 나약하게만 만들었습니다. 12지신을 단단하게 돌에 새겨넣는 것은 그런 나를 부여잡는 행위지요.”


그는 돌을 조탁해 나가다 보면 돌속에서 오묘한 색이 나오고 형상과 어우러지는 모습에 빠져든다고 한다. 군자가 자기에게 힘쓰고 자기를 만들어 가는 절차탁마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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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되는 놈은 거꾸로 메달아 놓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돌과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돌이 나를 단단히 세워주고 있는 셈이지요”


사실 12지신(十二支神)은 '땅을 지키는 12마리 동물 신'을 의미한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순서로 이어지는 12간지 동물을 말한다. 삼국시대부터 수호신으로 여겨져 왕릉 주변에 조각되거도 했다. 12지신은 결국 그를 지켜주고 견디게 해주는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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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와 돌과의 인연은 오래 됐다. 대학졸업 후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미술장식품 법안을 만드신 연희조형관 고 김영중 관장님의 지도아래 오석에 그림을 세기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종로 정독도서관 입구에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검은 오석에 세겨져 있는 것이 김영중 조각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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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작업은 드로잉 이미지를 오석에 세기면서 돌그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먼저 그림을 그리고 단단한 오석에 세김과 연마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손가락 관절에 치명적이지만 지금까지 견뎌오고 있습니다. 통증을 동반한 쓰라림이 깊어갈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깊어갔지요. ”


매끈하게 연마된 오석에 작업을 한지 15년정도 됐을 무렵 그는 단조로운 검은색을 대체할 재료를 찾게 되었다. 그것이 강원도 정선에서 생산되는 아라리석 이였다.


“아라리석은 마치 물결이 수초를 흔드는것 처럼 오묘한 느낌을 지녔어요. 마주하는 순간 벌떡이는 잉어의 모습이 어른거렸지요.”


그에게 아라리석이 다양한 형상의 잉어작품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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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순항을 거듭하던 작업에 어느날부턴가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어요. 대형작업을 할 수 없어서지요. 그것이 또 다른 재료를 선택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국산과 수입석의 경계에서 고민을 하던중에 전세계 수입석이 전시되어 있는 업체를 찾아갔다. 지금까지 보지못한 희귀한 문양과 색감의 석판에 매료됐디. 다양한 대리석과 화강석을 선택함으로써 창작의 범위는 자연스레 더 넓으졌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아크릴 물감을 더하면 한지처럼 스며들며 깊은 맛을 낸다.


“대리석은 수억년에 걸쳐서 생성되는 시간을 담고 있어, 종이 보다는 훨씬 더 강렬한 느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물성을 지녔습니다, 그것은 미술의 영역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건축의 공간까지 다다를 수 있어 점점 돌그림의 매력에 흠뻑 빨려들어가고 있지요.”


이제 김종호 돌그림은 갤러리에 갇혀있는 전시작품을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향유하는 생활공간에 설치되고 있다. 공간과의 어루러짐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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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프리존(newsfree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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