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대미술가 곽덕준, 향년 88세로 별세

편완식 미술 전문기자

by 뉴스프리존

재일교포로 굴곡진 현대사 온 몸으로 받아들여

인간실존을 블랙 유머적 개념미술로 승화시켜

38.jpeg 생전에 ‘대통령과 곽’ 시리즈 앞에 선 곽덕준 작가


“한국에서도 이질적인 존재, 일본에서도 이질적인 존재, 이 두 가지가 뒤섞인 상태에서 생겨난 독자적인 세계관이 내 작업의 근원이 되었다.”


재일 교포로 한국과 일본에 오가며 활동하던 원로 화가 곽덕준이 지난달 26일 일본 교토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곽덕준은 한일 미술 교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 분야, 특히 실험미술 전개 과정에서 교두보 역할을 하며 독창적인 미술 언어를 확장해 왔다.


1970년에 제작된 ‘계량기’ 시리즈는 바로 그해에, 일본을 방문했던 당시 구겐하임 큐레이터 에드워드 프라이(Edward F. Fry, 1935–1992)에게 공개적인 찬사를 받으며, 한국 작가로서는 가장 이른 개념미술 작업으로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곽덕준은 1969년부터 정상화, 박서보 등과 어울리며 한·일 교류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확고하게 자리 잡은 관념들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세계 인식의 무의미함을 독창적인 조형성이 담긴 작업으로 구현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작업은 회화에서 설치·퍼포먼스·영상·사진·판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개되며, 그 실험의 진폭은 한 영역에서도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이처럼 곽덕준의 작품세계는 실험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작가 노트에서 드러나듯이 ‘재일한국인(Zainichi Korean)’이 바라보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시선도 곽덕준 예술세계의 주요 키워드다.


곽덕준은 1960년대 중반에 일본 전통 염색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화법의 초기 회화 작업을 선보였다. 이 기묘한 유기적 형태의 추상 작업은 1969년에 종결된다. 이 작업은 1970년 내내 개념 미술적 작업을 발표하며 과거의 역사로 봉인되었다가 1998년 도쿄 유라쿠초의 아사히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곽덕준의 회화, 또 하나의 60년대’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2014년에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에서 열린 초대 개인전 ‘곽덕준, 1960년대의 회화를 중심으로’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2022년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그의 이전 작업 세계와는 차별화된 독특한 회화 작업으로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본격적으로 개념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는 곽덕준을 상징하는 작품세계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하는 시기로, 작가는 사진·콜라주·비디오·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전개하였다. 작가는 1974년 대표작 ‘대통령과 곽’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는 해마다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실린 당선자 얼굴의 절반 지점부터 거울로 가리고 본인 얼굴을 비추어 촬영한 작품이다.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개념을 기반으로 한 이 작업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논란을 야기했다. ‘대통령과 곽’ 시리즈는 제럴드 포드(Gerald Ford)부터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까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소재로 삼십 년 넘게 이어지며 그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의 ‘반복’ ‘타임’, 1990년대의 ‘무의미’ 시리즈 등을 경유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곽덕준은 자신만의 아이러니한 유머와 냉소를 동원해 사회와 개인의 관계, 현실과 의식, 미디어와 개인적 사유의 거리라는 문제를 일관되게 풀어내며 세계의 이중성을 역설적으로 되묻고 진실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특히 ‘반복’ 시리즈에서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대중매체 이미지를 예술로 변환하며 정보의 재구성을 시도하였다.


1937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곽덕준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고 이민족으로 분류되었다. 일본 태생의 한국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타인으로 살아온 곽덕준의 독특한 출생과 성장 과정, 사회적 위치와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뇌는 작가의 작품 전반에 걸쳐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나타난다. 1955년 일본 교토 시립 히요시가오카 고등학교 일본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굴곡진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 인간의 실존을 블랙 유머적인 개념미술로 승화시킨 고인은 일본의 전통 옷인 기모노 염색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다 23세에 결핵에 걸려 요양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뉴스프리존(newsfreezone.co.kr)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0화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