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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같은 나무와 숲 그리는 허준 작가

편완식 미술 전문기자

by 뉴스프리존

27일~9월15일 토포하우스 ‘시간을 타고 거닐다'전

조부 남농의 집에서 본 수석,난 해송도 소재 삼아

17.jpg 화업 30년을 맞는 허준 작가


“요즘도 의도를 하면 생각대로 안되고 우연하게 생각과 이미지가 겹쳐질 때를 기다린다”


허준(49) 작가는 2005년 첫 개인전 이후 산수시리즈 작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실험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작품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27일부터 9월15일까지 토포하우스 전관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시간을 타고 나무와 숲을 거닐다, Walking through trees and forests in Time’ 에서는 그동안의 작업 여정을 보여주는 평면 회화, 드로잉 등 2005년부터 2025년까지의 작품 30여점이 걸린다.


작가는 20대때 화면의 2/3 이상을 여백으로 남긴 전통 산수 작업 ‘여정’시리즈를 시작으로 2010년대에는 ‘구름 속의 산책’시리즈로 이어갔다. 산속에서 느낀 기억의 풍경을 배경없는 패턴화된 나무작업으로 표현했다. 2021년부터 시작한 나무를 모델로 한 작업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작업실을 오가며 특정한 장소의 나무를 관찰하고 해석해 풀어낸 상상화이다. 작가에게 길가의 나무와 숲은 오랫동안 친근한 존재다. 20여년 전부터 친구와 설악산과 지리산 등산, 호남 유명 지역의 트레킹 길을 걸으며 특별한 나무들도 관찰하고 눈에 담아두었다.


5.png 오아시스

최근 작업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8 ~1987)의 목포 집에서 늘 보았던 수석(壽石), 해송 분재, 난을 기억의 모티브로 삼는다. 스케치 없는 작업은 곤충 표피와 같은 문양이 나타나며 생동하는 꾸물꾸물한 패턴은 생명체로도 보인다. 나무는 작가의 페르소나, 의인화된 동물 또는 벌레가 숨을 수 있는 공간과 장소이기도 하다.


6.png 히든플레이스


매일 잠자기 전에 일기처럼 그리는 목적없는 낙서로 시작된 드로잉(주로 종이에 펜)은 실험적 작업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작가에게 드로잉은 순간적인 자신의 생각과 내면의 감정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다. 작품 ‘SHE’는 민두(미용 실습용 두상)에 모발 대신 배추와 알타리 무 이파리를 이식한 모습이다. 빳빳하고 드센 성질의 알타리 무와 부드러운 배추의 어우러짐이다. 세상의 이치다.


18.jpg 구름속의 산책


작가는 대인 관계에서 자신감 부족, 비행기 탑승이 두려운 공황장애 등 일상의 상실과 결핍을 창작 욕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는 화업 30년의 시간을 점검해 보는 자리다. 작가는 지난세월 숲과 산수를 거닐며 자신과 마주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팝아트적인 느낌의 나무는 그의 자화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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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프리존(newsfree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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