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완식 미술 전문기자
삶에서 맞닥뜨리는 고비들마다 꺼내 읽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시인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책으로 엮여 출간됐다.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이니티오)는 그룹 산울림의 멤버 김창훈이 한국의 근현대시 1,000편에 곡을 붙인 ‘시노래 1,000곡’을 발표한 것을 기념해 시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신달자, 나태주, 김준태, 정호승, 도종환 등 25명 시인들이 자신들의 대표시가 만들어진 과정과 김창훈의 시노래로 재탄생된 것에 대한 소감을 담았다. 맹문재 시인의 서문과 23명 시인들의 에세이로 구성돼 있다.
김창훈은 2021년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시에 곡을 붙여 시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하며 4년에 걸쳐 1,000곡의 시노래를 완성했다. 이어령 선생의 시 ‘정말 그럴 때가’가 1,000번쨰 시노래이고, 그 시의 시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정호승 시인은 몇 년을 벼르기만 하다 운주사의 와불을 직접 보고 나서야 막혔던 마음을 걷어내고 단숨에 써내려 간 시가 ‘풍경 달다’였다며, 뭔가 마음에 걸린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실행할 것을 조언한다.
김영춘 시인은 어릴 적 우연히 보게 된 저수지의 숭어잡이에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풀어낸다. . 물 위를 박차고 튀어 올라 그물 너머로 유유히 사라져간 숭어의 ‘후들거림’이다. 자신이 숭어와 같은 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그 이후 평생 가슴 속에 숭어가 펄떡이고 있다는 것이다.
공광규 시인은 식민지 수탈과 전쟁의 상흔이 남긴 가난과 폭력의 시대를 아버지 세대는 소주병과 함께 버텨왔다며 폐암으로 쪼그라든 아버지를 ‘소주병’으로 묘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 ‘소주병’이 자신의 대표시가 됐고 김창훈의 시노래로도 만들어지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정록 시인은 밴드 산울림의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 홍대 앞 산울림 소극장 주변에서 생활했던 추억을 소환한다. 어느 날인가 골목길을 지나던 중 반투명 창문에 어슷하게 비친 칫솔 통의 칫솔 두 개가 서로 몸을 기대고 있을 것을 보고 풋풋한 새내기 커플을 떠올렸다고 한다.
한영옥 시인은 남편의 암 수술과 자신의 우울증 진단으로 어려움을 견뎌내야 했던 순간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런 과정들이 지나, 유난히 짙은 눈썹 두 줄과 나이 들어 얄팍해진 가느다란 입술이 허공에 진하게 그려지며 단숨에 써내려 간 시가 ‘애절’이었다고 말한다.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시 ‘풀꽃’이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 13명의 작곡가가 곡을 붙였는데, 김창훈의 시노래는 「풀꽃1」과 「풀꽃2」를 묶어서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우리 시대 시인들이 자신들의 대표시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산울림 김창훈의 시노래 프로젝트 덕분이다. 김창훈은 그룹 산울림의 멤버로, '회상' '독백' '산할아버지'와 같은 명곡의 작사∙작곡자이다. 산울림 이전에는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나 어떡해’의 작사∙작곡자였고, 또 가수 김완선의 1집 ‘오늘밤’, 2집 ‘나홀로 뜰 앞에서’ 전체를 작사∙작곡∙제작하기도 했다.
김창훈은 오는 10월 15일(17시~) 시노래 1000곡 기념 콘서트를 신사동 거암아트홀에서 연다. 또 김완선과는 10월 15일부터 11월13일까지 갤러리마리에서 2인 미술전도 연다. 음악과 미술을 넘나드는 공감각적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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