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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

by 우이애

106동 우리 집에서 아파트 정문까지는 나의 걸음으로 2분을 걸어야 하는데 4월 둘째 주는 2분 40초를 걷는다.

길 양 쪽에 1.5m 폭으로 심어져 있는 벚나무를 즐기느라 천천히 걷기 때문이다.

벚나무에는 벚꽃이 하나도 없고 나는 기분이 좋다.


나는 [벚꽃이 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수그러들 때, 녹색 잎이 무성한 싱그러운 벚나무를 보는 것을 즐기는 모임이다. 정확히는 내가 만든 모임이고 회원은 아직 나 포함 둘 뿐이다.


봄바람이 꽤 세게 분다.

흔들리는 벚나무 가지들 사이로 새소리가 들린다.

무슨 새일까? 우리 단지에서 마주친 새는 이 동네 서열 1위인 까치뿐이라 삐로로롱 우는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하다.

소리 나는 쪽으로 재빨리 시선을 던져봐도 조그마한 몸을 겹겹의 잎사귀 속에 숨겨 보여주지 않는다.

뽀로로삐로로롱 목소리만 들려준다.

그 새는 3월의 꽃나무를 더 좋아할까 지금 저 초록잎 나무를 더 좋아할까?


새소리를 함께 들으며 나란히 걷던 열 살 소년은 내 손을 놓고 뛰어갔다 다시 오길 반복한다.

길에 떨어져 있는 반짝이는 조각이 뭔지 보고 오고, 쥐며느리를 잡았다가 놓아주고 온다. 벚나무 아래 철쭉 화단을 들여다보며 햇빛이 비치는 쪽의 철쭉이 반짝반짝 더 예쁘다고 말한다.

'철쭉'이라는 이름도, 진한 자줏빛 색깔도 영 촌스럽다고 생각해 무심히 지나치던 철쭉 화단을 나도 뒤돌아본다.

꽃송이를 빼곡히 품은 철쭉이 새삼 인심 좋아 보인다.


철쭉꽃 틈에서 거미를 발견했다며 뛰어오는 아들한테 시큼한 땀냄새가 나지만 때맞춰 부는 바람 덕분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들이 묻는다.

"엄마는 가지가 넓게 펼쳐지는 나무가 좋아 아니면 높게 자라는 나무가 좋아? 나는 넓게 펼쳐지는 나무가 좋아."


"글쎄? 엄마는.."

단지를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벚꽃이 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의 어린 회원이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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