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 있어

by 유미애

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아주 부끄럼쟁이였단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말도 잘 못 했고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발표를 시키면 얼굴은 달덩이가 되어 화끈거렸다. 엄마 입속에서 나온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도 않았고 엄마 혼자 옹알이하는 수준이었지.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단다. 누가 엄마에게 질문이라도 하면 심장은 팔딱팔딱 뛰기 시작하고 눈앞이 하얘져서 엄마가 해야 할 말을 다 잊어버리고 멍해졌단다.


남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내가 아주 싫었지. 극복하려고 아무도 모르게 웅변학원에 다니기도 했단다. 웅변학원에서도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라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학원을 그만두었단다.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게 두려움을 넘어 공포였단다. 20대 때도 할머니와 함께 외출할 때는 항상 고개가 땅을 향해서 할머니께서 고개 들고 다니라고 엄마에게 주의를 주시기도 하셨지. 사람과 부딪히는 게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 대인공포증이 있었던 거지. 물론 친하게 지내는 사람과는 아주 말을 잘하며 지냈단다.
결혼 후 직장에서 발표할 일이 있었단다. 며칠을 연습을 했고 당일은 우황청심환까지 먹고 발표를 했지만 만족도는 제로 수준에 가까웠고 엄마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어떤 분들은 1을 알면 10을 아는 것처럼 발표하는데 엄마는 10을 알아도 1만 아는 것처럼 발표하니 답답할 노릇이었지. 엄마는 발표 잘하는 사람을 무척 부러워했단다.
어느 날 연수를 가게 되었고 많은 분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단다. 미리 얘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호명을 받았어.


“선생님의 미래 꿈에 대해 발표해 주세요.”


많은 사람 앞에서 처음 발표하는 거였지만 그날 머릿속으로 엄마의 미래 인생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담담하게 발표를 했고 큰 박수를 받았단다. 발표를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에 엄마는 스스로 아주 놀랐고 기뻤어. 조금씩 극복되어 가는 대인공포증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단다.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강의를 하고 있어. 강의를 듣는 분들은 엄마가 처음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단다. 처음 강사를 할 때 엄마는 며칠 밤을 새워서 강의 내용을 다 외워버렸단다. 연습하고 또 하고 그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단다. 지금도 100% 극복되지는 않았어.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몇 사람 앞에서 시연해야 하는 경우는 두렵고 늘 나의 능력을 다 발휘를 못 하고 있어서 속상할 때가 있단다.


사랑하는 딸!
엄마의 사연이 길었지.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단다. 음치 박치라 노래방 가는 것도 싫어하고 많은 사람과 어울려 노는 것도 싫어하고 발표를 잘하는 것도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란다. 엄마가 잘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자신이 있단다. 엄마의 많은 결핍을 그렇게 보충하는 거지.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매일 영양제를 한 알씩 먹는 것처럼 말이야. 엄마는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한 결과 하나둘 엄마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단다.

윤!
너는 타고난 능력이 많은 사람이란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특히 네가 좋아하는 것에는 무서울 정도로 몰입하는 게 너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 엄마는 부족한 능력으로도 하나하나 원하는 걸 이루어 가고 있단다. 너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발휘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그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

늘 응원한다.





사랑하는 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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