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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애 Nov 19. 2021

비행청소년? 나는 위기청소년이라 말한다.

비행청소년? 나는 위기청소년이라 말한다.     


주 1회 법부무 기관에서 비행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비행 청소년이라 하지만 나는 위기 청소년이라 말한다. 꽤 오랜 기간 이곳에서 강의했다. 보통은 중학생부터 스무 살까지지만 초등학생이 있는 경우도 있다. 교권을 침해한 학생도 있고 사이버 성폭력, 성폭력, 절도, 사기, 집단 따돌림, 무면허 운전 등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온다. 청소년의 범죄가 심각해질수록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의 수준도 심각해진다. 장난으로 시작해서 별 죄의식 없이 죄를 짓고 오게 되는 경우도 있고 죄인 줄 알지만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가 들어 오는 예도 있다.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으로 이곳에 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재수 없어서 들어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죄를 자랑스럽게 자랑하듯 말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교육받는 자체를 가볍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이곳에서 교육과 상담을 받은 후 결과와 함께 법원에서 판결을 받는다.      


위기 청소년의 문제는 결코 청소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모든 환경이 연계되어서 발생한다. 그 중심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크다. 그래서 청소년 문제가 발생하면 청소년과 함께 보호자가 부모교육을 받는다. 부모뿐만 아니라 학교와 사회도 청소년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신경을 써야 한다. 물리적 여건으로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은 지역사회에서 품어줘야 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살펴줘야 한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예전에 교육현장에서 어떤 분이 발표하는 것을 듣고 일어나 반박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대부분 한부모 가족 아이들이다.”

학교의 리더가 이런 편견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니 소외계층 아이들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 청소년들 중에는 한부모 가족의 자녀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가족의 자녀들이 있다. 한부모 가족의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한부모 가족 아이라 문제를 일으켰다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어른들의 편견부터 바뀌어야 건강한 사회 속에서 건강한 아이들로 자랄수가 있다.

  

법원에서 천종호 판사님이 부모와 교사에게 참교육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다른 아이들 비행 저지를 때, 부모 없는 아이들 왔을 때, 선생님 법정에 한 번 와 보신 적 있습니까? 이상하게 이런 아이들은 선생님이 딱 와요. 탄원서도 굉장히 좋게 써줘요. 그게 뭐가 있겠습니까? 학교가 힘 있는 놈들은 살아남고 힘없고 부모 없는 애들은 쫓겨나고 보이는 것만 보시잖아요. 보이지 않는 걸 봐야지. 우리 사회가 부모들이, 어른들이 아이들 문제를 해결 안 하려 하잖아요.”     


우리 어른들이, 학교가, 사회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오늘은 위기 청소년 강의가 좀 힘든 날이었다. 예전에 학원을 운영했고 오랜 기간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누구보다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들 편에서 강의를 하려고 노력한다. 강의 만족도에서 위기 청소년에게도 그 마음이 전달된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가끔 힘들 때가 있다.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강의장 들어갈 때부터 자는 아이들은 수업 중에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이곳은 학교와 다르다. 자는 아이를 그대로 두면 다른 아이들도 금방 따라 엎드린다. 깨워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여학생은 강의 시작할 때부터 엎드려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깨워서 활동지를 하게 했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 아이의 성장 과정이 궁금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상담하고 싶었지만, 그곳에서 내 역할이 아니라 물어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불러서 수업 중에 왜 엎드려서 잠을 자냐고 물어보니 밤에는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십 대 소녀가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단 한 번도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4시간 연강이었는데 쉬는 시간 후에도 엎드려 자는 그녀를 깨울 수가 없었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지금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고, 혹시나 사건이 아닌 다른 일로 힘든 상황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종일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그녀가 별일 없기를 바라며 행복한 추억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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