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저녁만은 선선했던 그때에 나는 짧았던 만남에 이별을 고했다.
그때 나는 욕심이 많았고, 연애는 내 발목을 잡는 것, 귀찮은 것이었다.
한 때 내가 필요로 했던 사람이지만, 나는 이 사람을 끊어내야
조금 더 나를 찾을 수 있다고, 내가 욕심내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야말로 오만이었다.
사실 나는 태양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든 이를 환하게 비추며,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어쩌면 경외받는 존재. 하지만 난 태양이 되기엔 너무나도 겁이 많고, 소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지 않았다.
항상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들에게 왜 먼저 사람들이 말을 걸고, 친근감을 느끼고, 다가가고 싶어 할까 궁금해했고, 그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친절한 사람, 재밌는 사람, 우울한 사람, 신비로운 사람.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포근한 사람.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고, 소원을 빌게 되는 사람.
무엇보다 잠잠한 암흑 속에 빛나며, 모습을 달리할지라도 항상 그곳에 있는 사람.
태양은 아니지만, 그만큼 필요한 존재.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길 갈망했다.
내 어린 시절은 불우하지 않았다.
단지, 나를 많이 걱정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아마 걱정 때문에 그렇게 공부하라고, 끊임없이 정진하라고, 나를 몰아세운 게 아닐까?
스무 살 무렵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만 해. 나에게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야 하니까.”
이 말은 내가 찾던 정답이었다.
내 가치를, 내 존재의 이유를 ‘증명’ 하기 위해 난 더 완벽한 첫째 딸이 되어야 했다.
명문 대학, 졸업 전 스카우트, 최연소 사원,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엘리트.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부채였다.
따뜻한 밥과 몸을 뉘일 집, 내가 입는 모든 것과 쓰는 모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길었던 유학생활.
넉넉지 않은 살림에 내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과 외할머니의 희생이었다.
10만 원짜리 가방 한 번 갖지 못했던 엄마와, 인건비를 줄이려 주말 없이 일했던 아빠, 한평생 아끼며 살아오는 것이 몸에 베여 10년 지난 젤리까지 뜯어먹는 할머니. 나는 이 모든 것을 갚아야 했다. 특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에게는 더 빨리 갚아야 했다.
여자의 삶이 싫었다.
엄마를 보면서, 할머니를 보면서, 똑똑하고 유망한 젊은 여자들이 아이를 가지면서 친구도, 경제력도, 능력을 펼칠 무대도, 마음을 터놓을 사람도 모두 잃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다. 그들도 환히 웃던 학생이었는데, 흔한 과외 한 번 없이 서울대에 합격한 엘리트였는데. 그들은 단지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모든 걸 부어줄 뿐이었다.
그럼 나는 장녀가 아닌 장남처럼 내가 모든 걸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응당 보상해야 했다. 내 동생은 이런 삶에 끌어들이면 안 됐다. 이게 내가 아는 사랑이자 내가 나를 옭아맨 족쇄였다.
사실 자신만만했다.
경쟁에서 난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경제력과 자신감으로 뭉친 사람들 사이에서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출발 선이 다르면 먼저 출발하면 그만.
두 배, 세배 더 노력해서 더 열심히 달리면 그만.
19살에 대학에 갔고, 22살에 졸업했다.
22살에 취업했고, 주변 사람들 중에 가장 빨랐다.
파티, 놀이, 친구,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단계까지도, 많은 걸 놓쳤지만
그 무엇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았다.
나는 압도적으로 빠르지 않으면 안됐다. 금방 경쟁에서 뒤처질 위치. 그 차이를 메꿔야만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족쇄는 서서히 나를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세상은 절대 나에게 무언가를 그냥 주지 않았다.
내가 노력한 만큼만, 내가 내어놓은 만큼만 이룰 수 있었다.
Give & Take. 내가 깨우친 세상의 진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받은 모든 걸 갚아야만 했다. 선택이 아닌 의무.
내가 거절하지 않고 받았기에 나에게 생긴 내 모든 빚.
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웃으며 받을 수 있는 사랑.
스스로 채찍질했다. 하루 빨리 내 부채를 모두 탕감하고 싶어서.
그러나 더 이상 달릴 체력이 없었다.
"나는 두 배, 세배 더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자학을 시작했다.
점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하루 편안히 쉬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사람들을 만났고, 이것저것 일을 벌였다.
일단 시작해 두면 끝마치지 않을까 싶어, 여러 사람을 끌어들였다.
기댈 곳이 없었다.
더 이상 빚을 지고 싶지 않았기에, 고민을 털어놓는 연습조차 해보지 못했다.
내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항상 웃었고 괜찮다고 말했다.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누군가 조건 없는 사랑을, 신뢰를 부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맹목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준 만큼만 세상은 나에게 준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분명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웃는 것이 힘들어졌다.
예민해졌고, 짜증이 늘었다.
누군가 눈치채고 나를 구해주길 바랐다.
내가 보낼 수 있었던 정말 작은 SOS.
많은 사람이 알았다. 내 예민함, 내 변화, 내 이상까지.
그러나 아무도 나를 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웃기로 했다.
내 마음을, 내 상태를 철저히 외면하고 웃기로 했다.
그럼 이 웃음에 나조차도 속아 넘어가 다시 웃을 줄 알았다. 항상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내 얘기를 꺼냈을 때, 친구는 나보고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무너지고 있는 것을 인지하라고 했다.
내가 내 상태를 제일 먼저 알았는데 큰소리는.
내가 무너지는 게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친구가 ‘참 너답구나’ 싶으면서도 야속했다.
나는 항상 네가 상처받는 걸 염려했는데. 네가 힘들 때 "너"를 지키기 위해 내가 힘들어지는 길을 택했는데.
내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를 지레짐작한 동생이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부채는 내가 만든 것 이라며 내려놓으라는 말에 나는 부정당했다.
내 존재 이유는 ‘필요’인데. 난 내 가치를 증명해야만, 내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존재에 이유가 있는 것인데.
세상이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나 혼자 족쇄를 만들어 심연으로 빠지고 있다는 말에 내 존재의 이유는 다시 한번 부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