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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희 Oct 20. 2024

어떤 신위_3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3화   


 “영주야 옛날옛날에 엄마랑 아빠랑 삼촌하고 아장아장 걷는 예쁜 아기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대. 그 집에는 꽃이 많았는데 어느 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단다. 벚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고 있었어. 아카시아꽃이 막 피던 날 아침 아빠가 출근을 서둘렀지. 아기는 서두르는 아빠 곁으로 뒤뚱대며 걸어가서 아빠 볼에 뽀뽀했단다. 아기가 출근하려는 아빠를 붙잡고 막 울었어. 아빠는 출근 시간 늦겠다며 아기를 거실에 내려 두고 나갔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아기가 떼를 쓰는 거야. 아빠 갔다 올게,라고 달랬지.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아빠가 유난히 큰 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갔어. 그런데 그날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단다.”

  나는 초등학교 삼 학년이 되었을 무렵에야 ‘옛날옛날’ 이야기를 이해했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윤환을 상상하며 우는 날이 많아졌다.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정신을 팔았다. 어떤 날은 방 안에서 웅크리고 멍하게 있었다.

  그 가족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같은 이야기처럼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리에 콕 박힐 정도였다. 이야기 속 아빠는 내용이 조금씩 늘었다 줄었다, 달라졌지만 늘 같은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아빠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고 물었다.

  삼촌은 ‘옛날옛날이야기니까 나도 모르지,’ 하며 힘없이 대답했다. 옛날이야기의 결말에는 반드시 아빠는 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내가 조금 더 자라서 엄마는? 하고 물으면 아빠 찾으러 가서 안 왔어, 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오래도록 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이 죽었을 거라 했고 누군가는 어딘가로 팔려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삼촌은 형과 형수를 찾아 수소문하고 기다리며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삼촌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형 그늘에서 자랐다고 했다. 오로지 형제뿐이었던 삼촌에게 형이 이유도 없이 사라지자, 혈육이라고는 나 하나였다. 나는 삼촌 손에 자라면서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고졸로 이렇다 할 스펙은커녕 자격증 하나 없어 변변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가 생기면 아르바이트했고 일자리가 없으면 쉬었다. 삼촌은 부모 없는 나를 위해 노력했지만, 부모 없는 아이의 초라함이 감춰지진 않았다. 낚시에 빠졌던 남자 친구 생각을 하자 지난 시간이 통통 튀어 올라왔다.

  비행 날짜에 맞춰 제주도에 왔다. 삼촌은 몇 달 만의 만남이었지만 오랜 세월 보지 못한 사람처럼 반겼다. 내게 당장 제주도로 오라던 숙모는 귤밭으로 데려갔다. 제주로 이사 후 귤 따는 일을 한 모양이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나를 보조로 데려왔노라고 넉살 좋게 소개했다. 주인과 일하러 온 할머니 둘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일당은 두 배로 줘야겠구먼.”

  숙모는 웃으며 조카가 심심할 것 같아 데려왔다고 했다. 일을 빨리 끝내고 나랑 놀아주려는 숙모의 계산처럼 느껴졌다. 나는 숙모가 시키는 대로 일을 거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주인이 컨테이너 그늘막에 밥과 국을 내왔다. 인부들은 각자 가져온 반찬을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숙모도 제주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다는 자리젓을 꺼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숙모가 봉지 커피를 종이컵에 털어 넣고 커피포트 물을 가져다 부었다. 커피를 기다리던 옆자리 할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제주도에 왔시먼 구경해야지 무슨 밭일을 왔쑤꽈?”

  할머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숙모가 냉큼 받았다. 조카는 낚시를 좋아하는데 내일 이곳에 일이 없으니 낚시하러 갈 것이라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반사적으로 ‘낚시? 옛날엔 터진목이 낚시는 최고였어’라고 했다. 나는 터진목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곳으로 낚시를 가볼까 생각했다. 지금도 그곳에서 물고기가 잘 잡히는지, 낚시하는 사람이 많으냐는 내 물음에 옆에 앉은 할머니가 지금은 가본 지 오래되어 모르겠다고 했다. 이젠 터진목이 아닌 광치기 해변이란 말도 덧붙인 후 이내 할머니끼리 대화를 나눴다. 토벌군이 바닷가에 사람을 세워두고 총을 쏴서 죽인 사람 피가 바닷물이 빨갛게 물들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이 얘기 저 얘기 두서없이 했지만, 나는 바다에 피가 빨갛게 물들었다는 얘기에만 귀가 솔깃했다.  

  낚시가 잘된다는 얘기인지, 관광객이 많다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바다가 피로 물들 정도로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자, 할머니는 봉개동에 가면 죽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면서 궁금하면 그곳에 가보라 했다. 봉개동을 검색하자 평화공원이 검색되었다. 어린 시절 삼촌이 내게 들려주었던 ‘옛날옛날’ 이야기가 속절없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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