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어오던 어린 시절, 엄마는 겨울을 나기 위해 연탄을 들여놓고 집 앞마당에 장독대를 묻으셨다.
그 속에는 김장김치와 쌀, 잡곡, 채소까지 겨울 식량이 가득했다.
땅속에서 꺼낸 김치 맛은 유난히 깊고 시원해, 한 끼에 김치 한 포기를 뚝딱 해치우는 일도 흔했다.
지금은 장독 대신 김치냉장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땅속에서 숙성된 김치 맛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김치 덕분에 겨울나기용 김장은 점점 사라지고,
나 역시 아직까지 직접 김장을 해본 적이 없다. 사 먹는 김치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김장을 한다며 마늘 두 접을 사 오셨다.
그리고는 그 많은 마늘을 다듬어 빻아오라며 나에게 맡기셨다.
물에 불려 두 배로 불어난 마늘을 까며 한숨을 내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온몸이 쑤시고 둥글게 말려 앉아 마늘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남편이 귀가했다.
“뭐 해?”
“엄마가 김장한다고 마늘 다듬으래.”
“와, 이렇게 많아?”
“응, 200개 두 접이야.”
그러더니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마늘 까는 모습이 볼만한데? 왜, 사람 되려고?”
그 순간 나는 곰처럼 덩치 큰 웅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아니라 남의편이다.
역시 로또같은 남편이다.
안맞아. 안맞아.
그러나 ‘사람 되려고’라는 농담이 서운하면서도 웃기게 다가왔다.
덩치로서는 틀린말이 아닌 것이 씁쓸하지만. 하하하하
살은 여전히 잘 빠지지 않았지만,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는 덕분에 나는 그냥 ‘동안할머니’로 살아가려 한다.
김장과 마늘,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가족의 기억은 여전히 내 삶의 한켠을 따뜻하게 채우고 있다.